바야흐로 월드컵 시즌이다. 지지 않으려는 축구를 보는 것만큼 따분한 일도 없겠지만 누가 뭐라 해도 실리 축구의 기본은 골을 허용하지 않고 잘 지켜내는 것이다. 기술개발(R&D) 분야에서는 국가 경쟁력 근간을 이루는 산업 기술을 잘 보호하는 것이 실리의 기본이다.
우리나라 총 R&D 투자 규모는 약 70조원에 이른다. 이는 불과 8년 만에 배증했을 정도로 적극 확대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는 4.24%(2016년 기준)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가파른 외형 확대와 함께 R&D 투자 효과성 및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2월에 발표된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는 120개 중점 과학 기술을 도출해 국가 R&D의 효율 추진을 위한 기초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고 30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R&D 사업 기획을 점검하는 R&D 예비타당성 조사가 내용과 프로세스 측면에서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산업 환경 동조화와 개방성 확대는 기술 보호, 산업 보안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유행처럼 확산되는 스마트팩토리 및 무인공장과 관련된 첨단 제조 기술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 필수다.
또 세계 유수 기업들은 돈 되는 기술을 사들이는 데 매우 적극이다. 이런 가운데 이들이 주도하는 해외 자본에 의한 인수합병(M&A)은 기술이 국경을 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 증가 및 자연인 이동(모드 4)까지 넓히고 있는 서비스 개방 범위 확대는 반도체, 조선, 디스플레이 등 핵심 기술 인력 이동에 의한 기술 유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러한 때 미국 행정부 내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권한 강화 움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8년 엑손-플로리오법에서는 국가 안보를 해칠 위험이 있는 거래를 차단할 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CFIUS 권고가 이 행정명령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
2017년 미국 원전회사 웨스팅하우스의 중국 매각 불허, 2018년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중단 권고 등이 CFIUS 조사에 따른 것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표방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에서는 중국 자본에 의한 미국 기업 M&A를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이때 판단 기준이 되는 국가 안보에는 원자력과 같은 군사 위협과 함께 경제 위협이 포함된다.
지난해 낸드플래시 원천 기술을 보유한 일본 도시바 반도체 사업부문 매각 과정에서도 중국 기업 입찰 참여 여부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기초 원천 기술이 취약한 우리에게 훔쳐갈 기술이나 있겠느냐는 일부 자조도 있다. 일각에서는 시장 활동에 공공 부문의 지나친 개입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보유한 제조 기술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히 부러움 대상이다. 어차피 정책 가치는 이익 형량으로 판단될 문제이며, 필요한 만큼만 지나치지 않게 개입하도록 하는 것이 정책 결정 생태계의 책임이다.
마침 산업통상자원부가 '제3차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종합계획(2019~2021)'을 작업하고 있다. 이는 국가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한 선제 대응 체계 강화, 민간의 산업 보안 역량 확대 등을 지향하면서 만들어 나가는 국가 차원 최상위 계획이다. 실리의 기본을 갖추기 위한 좋은 포석 속에서 국가 경쟁력의 큰 그림이 그려지길 기대한다.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제도혁신연구단장 pcs1344@step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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