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주 52시간 근로시대, 대한민국 사무실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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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 근로시간 한도를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16시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시행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2004년 주5일 근무제 도입 이후 가장 큰 변화다. 지나치게 오래 일하는 우리 사회 관행을 바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정부는 기업 충격을 우려해 단속과 처벌을 6개월 유예하는 등 보완대책을 추가하면서도, 계획대로 근로시간 단축을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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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있는 삶' 열린다

정부가 7월 1일부터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게 함과 동시에 과로에서 벗어나 노동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함이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통해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세계 5대 수출 강국 도약도 기대된다. 하지만 여전히 삶의 질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경제는 선진국과 어깨를 겨룰 만큼 성장했지만 장시간 노동은 우리 사회 관행처럼 뿌리내려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시간은 주요국 가운데 최장 수준이다. 연간 근로시간은 2016년 기준 2052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2348시간)에 이은 2위다. OECD 평균(1707시간)보다 연간 500시간 더 많이 일한다. 경제 규모는 선진국 수준이지만 여전히 노동시장 환경은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장시간 노동이 초래하는 문제점은 다양하다. 최근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장시간 노동 관행이 추가적 고용 대체와 낮은 노동생산성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장시간 노동은 일과 생활 불균형과 스트레스 증가를 초래해 업무 의욕과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높은 자살률, 최하위권인 국민행복지수와 산업재해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있다.

우리나라는 긴 근로시간에도 노동생산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OECD의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근로시간 대비 노동생산성은 34.4달러다. OECD 평균인 52달러보다 17.6달러나 낮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 해결방안으로 근로시간 단축 카드를 꺼내 들었다. 7월부터 상시노동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해 삶의 질 개선과 함께 일자리 창출,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뼈대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근로시간 단축 시행 관련해 “노동시간 단축으로 국민의 삶이 달라지게 됐다. 정부·기업·노동자 등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부담을 나누면서 조기에 안착시켜 나가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단계적 시행, 계도기간 부여 등으로 충격 완화

근로시간 단축은 과거 주 5일제 시행 당시와 비교하면 두 배에 가까운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기업이 받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단계적 시행과 계도기간 부여 등으로 충격을 줄여준다.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확대한다. 7월부터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받는 곳은 상시노동자 300인 이상 기업이다. 현장 적용의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계도 기간을 둔다. 시행일인 7월 1일부터 6개월 동안 처벌을 유예하고 계도한다.

하지만 계도기간 부여를 '근로시간 단축 시행시기 연장'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고용부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에 즉시 착수하지 않을 경우 올해 안에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속·처벌 6개월 유예'는 계도기간과는 다르다는 설명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의 근로시간 단축은 7월 1일부터 시작된다. 다만 근로감독관 재량에 따라 최대 3개월간 줄 수 있던 시정 지시 기간을 추가 3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시정 지시를 받은 즉시 근로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조치에 착수해야 한다.

7월 1일부터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지만 시행하지 못한 사업장은 즉시 단축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이를 근로감독관에게 알려야 한다. 시정기간 동안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다가 시정기간이 끝나갈 즈음 채용공고를 내는 식으로 대응할 경우 추가 3개월 시정기간 연장은 없다는 게 고용부 입장이다.

단순한 채용 공고, 교대제 개편논의 시작에 그치지 않고 시정기간 동안 노사가 협의해 실질적으로 논의를 진전시킨 내용을 지방고용노동청에 알려야 한다. 고용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노사의 노력이 보이지 않을 때는 올해 안에도 사업주를 처벌한다.

노동자 50~300인 미만 기업은 2020년 1월 1일부터, 노동자 5~50인 미만 기업은 2021년 7월 1일부터 각각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받는다. 이 가운데서도 30인 미만 사업장은 2022년 12월 31일까지 노동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통해 1주일 8시간의 특별 연장근로가 한시적으로 인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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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 이미 52시간 시대 활짝

가장 먼저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300인 이상 대기업은 충격 완화를 위해 '유연근무제' 도입을 서둘렀다. 각 사 상황에 적합한 제도를 선택해, 직원이 '워라벨'을 지킬 수 있도록 출퇴근 문화 혁명 중이다.

삼성전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근무시간 관리에 직원 자율권을 부여하는 '재량근로제'를 7월 도입한다. 두 제도는 우선 개발과 사무직 직원 대상으로 시행된다. 재량근로제는 법적으로 신제품이나 신기술 연구개발 업무에 한해 적용이 가능한 제도다.

삼성전자는 해당 업무 중 특정 전략과제 수행 인력에 한해 적용하고 구체적인 과제나 대상자는 별도로 선정할 계획이다. 제조 부문은 에어컨 성수기 등에 대비하기 위해 '3개월 탄력적 근무시간제'를 도입한다.

LG전자는 지난 3월부터 사무직은 주 40시간 근무제, 기능직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범 운영하며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비했다. LG전자는 2월부터 선택·탄력적 근로시간제를 도입한 상태다. 사무직에 적용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주 40시간 근무를 채우는 전제로, 하루 근무량을 최소 4시간에서 최대 12시간 범위 안에서 근로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공장 생산직에 대해 2013년 주 40시간 근무제도를 도입했다. 이번에는 사무직을 중심으로 주 40시간 근무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는 5월부터 본사 일부 조직을 대상으로 '유연근무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를 '집중 근무시간'으로 지정해 반드시 근무하도록 하되, 나머지 시간은 개인 여건에 맞춰 자유롭게 출퇴근하며 근무하는 방식이다.

SK텔레콤은 2주 단위로 총 80시간 범위에서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는 자율 근무제인 '디자인 유어 워크 앤 타임'을 도입했다. 이번 주에 48시간을 근무하면 다음 주는 32시간만 일하면 되는 식이다. SK하이닉스는 2월부터 임직원 근무시간을 점검하고 주당 52시간이 넘을 경우 이를 통보해 해당 부서장과 직원이 해결 방안을 찾도록 하고 있다.

한화케미칼은 2주 80시간 근무(하루 8시간·주 40시간)를 기준으로, 야근 시 2주 안에 해당 시간만큼 단축 근무를 하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 여기에 자율적으로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는 시차 출퇴근제, 현금처럼 사용하는 복지 포인트 제도 등도 실시했다.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