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산업은 가능성을 먹고 성장한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제조업과 달리 연구개발(R&D) 단계가 길고, 그 자체가 자산으로 인식된다. 개발·생산·상업화 과정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다보니 위기도 많다. 다수 기대가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 '거품' 논란이 제기된다.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은 거품 논란이 늘 존재했다.
한미약품 공매도 논란과 기술수출 반환, 차바이오텍 영업이익 뻥튀기 논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 바이오·제약 대표주자 사건사고는 거품 논란에 힘을 싣는다. 오랜 노력의 결실을 맞을 준비에 고무됐던 산업계는 성장위축을 우려한다. 첨단 산업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시장에 바이오는 필수산업이다. 거품보다는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성장통'으로 봐야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가능성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R&D→상업화, 결실 문턱에서 '거품' 논란
국내 바이오산업은 2005년 '황우석 사태'로 암흑기를 맞았다. 투자와 산업육성 정책이 대폭 줄었다. 2015년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사 베링거인겔하임에 8000억원 규모 기술수출을 하면서 새 도약기를 맞았다.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면서 후발주자로 나섰다. 삼성·SK·LG 등 대기업도 바이오·제약에 투자를 확대한다. 신약개발이 활기를 띄면서 국가 신성장 모델로 부상했다. 정부도 바이오헬스 육성전략을 발표하며 세계 7대 강국 도약을 선언했다.
산업계는 최근 바이오 기업 회계논란에 대해 간신히 회복한 '바이오산업 신뢰'가 무너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R&D가 결실을 맺는 시점에서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성공보다 실패 가능성이 높고, 자산 가치 책정이 어려운 산업구조로 '거품'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년 전 비교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은 눈부시게 성장했다. 파이프라인, 투자현황, 설비, 성과 등을 고려하면 실체가 없는 '거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유승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바이오산업이 실체가 없거나 실제보다 부풀려진 거품이라고 보기에는 우리나라 기업 펀더멘탈(기본구조)이 탄탄하다”면서 “제조업과 달리 최종 제품화가 신속하지 못해 객관적 실적 지표가 안 좋을 수 있지만, 장기 관점에서 가능성을 평가하는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바이오 기술 역량과 기업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K-신약 파이프라인 943개, 바이오의약품 절반 넘어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 '한국 신약개발 파이프라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기업, 연구소, 대학 등이 개발 중인 파이프라인(신약 후보물질)은 총 934개다.
바이오의약품이 56.4%인 527개다. 합성의약품은 407개로 나타났다. 개발 단계별로 전임상 단계가 전체 37%인 356개로 가장 많다. 임상시험 진입 361개(38%), 후보물질 발굴 단계 264개(27%), 사전허가 15개, 임상시험 승인 9개 등 순이다. 임상시험 중 1상이 158개로 가장 많았고 임상2상은 105개, 임상 3상은 98개로 집계됐다.
암 치료 영역이 가장 활발했다. 파이프라인 중 종양 치료제가 전체 27%인 263개로 나타났다. 대사질환 135개, 중추신경 118개, 감염질환 100개, 면역 74개 순이다. 톱10 치료 영역 파이프라인 중 개발 단계별로 보면 전임상이 378개로 가장 많고 후보물질 발굴 254개, 임상 1상 175개로 나타났다. 기업별로 대웅제약이 42개로 가장 많은 파이프라인을 보유했다. 종근당, 한미약품이 각 33개, 31개로 뒤를 이었다.
일반적으로 신약후보물질 1000만개 가운데 임상시험에 진입하는 것은 9개 정도다. 그 가운데 최종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은 평균 1개다. 전체 후보물질 중 40%가 임상시험 단계에 진입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나라 바이오·제약산업 발전을 가늠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임상시험 수행률은 세계 1위이며, 보유 파이프라인 규모 역시 5~6위를 기록한다”면서 “신약 개발 사례까지 나오면서 후보물질 발굴부터 판매까지 전주기 노하우 확보는 성장 무기”라고 말했다.
◇돈 몰리는 K-바이오, 경험부족이 리스크
산업통상자원부 '바이오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바이오산업 총 생산규모는 8조9000억원이다. 전년대비 약 4% 늘었다. 바이오의료기기, 바이오서비스 등 신 영역에서 각 266.8%, 134.9% 성장했다. 수출규모도 4조4456억원으로, 전년대비 3.7% 성장했다. 고용인력은 4만1899명으로 4% 늘었고, 투자규모도 1조9568억원으로 13.9% 증가했다. 같은 해 바이오 스타트업·벤처 창업은 400개가 넘으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시장 기대감도 높다. 바이오·의료 벤처캐피탈 투자는 2011년 933억원에서 작년 3788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도 1486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세 배 늘었다.
산업계는 최근 기술수출 파기, R&D 자산화 등은 성장과정에 겪는 성장통에 가깝다고 분석한다. 한미약품,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SK바이오팜 등 국내 바이오·제약사 해외 진출이 본격화된다. 오랫동안 R&D에 머물렀던 기업이 회계·경영을 포함해 제품화, 유통 채널 구축, 마케팅 등 경험이 적은 부분까지 역량을 키워야 한다. 국내 기업 성장에 따라 글로벌 기업 견제도 강해진다. 특허소송, 영업이익 뻥튀기 의혹 등을 꾸준히 제기한다.
유 센터장은 “올해 초 도이치뱅크는 셀트리온 영업이익이 높은 것은 R&D 비용을 대부분 자산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국내 기업에 대한 글로벌 기업 견제가 심화됐다”면서 “최근 바이오 기업을 둘러싼 논란은 개선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오랫동안 R&D에 머물렀던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바이오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