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기업안전보건자료 무분별한 공개 중·미·일 기업 좋은 일”

황철성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최근 논란이 된 삼성전자 작업환경측정보고서가 일반에 공개될 경우 반도체 시장 진입을 준비 중인 중국은 물론 미국 마이크론, 일본 도시바 같은 경쟁사에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문진국·임이자 의원(자유한국당)실이 개최한 '산업안전과 기업기술보호 긴급정책 토론회'에서 “최근 삼성에 비밀준수협의서를 쓰고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훑어봤다”면서 “이 자료 속에 포함된 물질코드명과 공정장비 배치도를 보면 경쟁사는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고 결국 기술격차는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 물질 비밀과 생산기술 광범위하게 담겨

작업환경측정보고서에 포함된 물질코드명에는 소재명과 공정, 제조사, 제조년도, 물질 점도 등의 정보가 포함된다. 이 코드명 하나로도 핵심 재료를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것이 황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작년에는 없다가 올해 새로운 물질코드를 발견하면 경쟁사는 핵심 재료를 유추할 수 있고 해당 제조사에 연락해 '그 물질 우리도 쓰자'고 말할 수 있다”면서 “물질 제조사는 거래 관계상 을이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고, 기술은 그렇게 유출된다”고 말했다.

공정장비 배치도는 생산성과 직결된다. 반도체는 노광, 증착, 식각, 세정 등 8대 공정으로 이뤄져 있다. 아무것도 없는 웨이퍼가 생산 라인에 투입돼 하나의 칩으로 가공돼 나오려면 600~800번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 시간이 적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석 달 가량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등 제품이라면 가공 시간을 줄이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공정별 장비 배치 레이아웃이 중요한 이유다. 황 교수는 “웨이퍼를 가공해 칩으로 나오기까지 공장 내에서 최대 60km의 거리를 이동한다”면서 “이걸 최적화하면 웨이퍼가 움직이는 거리가 반으로 줄어들 수 있는데, 이것은 곧 생산성이 크게 향상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앞서 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전문위원회는 이 같은 이유로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판단했다.

노동계에선 이 같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연구소장은 “우리쪽 전문가들은 그 보고서에 국가핵심기술이 포함돼 있다는 판단이 나오자 실소를 금치 못했다”면서 “SK하이닉스의 경우 노동조합 사무실에도 비치돼 있는 그 자료가 핵심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조 소장 발언에 맞서 김형현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 책임전문위원은 “산업부 산하 반도체 전문가들이 참여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말했다. 조 소장은 “산업부는 기업을 대변하는 입장”이라면서 “공개 토론을 해서 국민들이 판단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동우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장은 “행정부는 법률과 판례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그 보고서 공개 결정을 내린 배경은 설령 회사의 영업비밀이라 하더라도 국민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면 공개하라는 정보공개법 취지와 대전고법 판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황철성 교수는 “지난 2월 1일 삼성 온양공장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유족에 공개하라는 대전고법 판시문을 봤더니 '아무 내용이 없다'라는 식으로 나와 있어서 황당했다”면서 “진짜 아무 내용이 없었다면 이런 논란이 생길 이유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기업 핵심 기술 3자 공개는 문제

김형현 한국경총 위원은 “최근 논란의 핵심은 기업 자료를 제3자에게 공개키로 한 결정”이라면서 “해당 보고서가 산재 입증에 필요한 정보라는 점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지만 제3자에게 공개하라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등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방송사 PD 등 제3자에게 공개하려 했다. 삼성전자는 행정심판원과 법원 등에 이를 저지하는 소송을 걸어 공개집행 정지 판정을 받았다.

김 위원은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측정결과보고서를 제3자에게 공개할 경우 해당 사업장이 입게 될 경영상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별도 절차나 방법도 마련돼 있지 않다”면서 “따라서 보고서를 제3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연구소장은 “공개대상과 범위 등의 절차가 규정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일정 부분 동의하지만 이를 업무관련성 입증만으로 제한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노동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 기업의 주주 등 모든 기업의 이해관리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위원은 “지역 주민에게 필요한 정보는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전체가 아니라 물질의 유해, 위험성 정보, 사고 시 정보전달과 대피방법에 관한 내용”이라면서 “이러한 내용은 이미 화학물질관리법에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김수근 성균관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알권리가 보장되려면 영업비밀과 관련된 정보는 보호하겠다는 책임준수도 동반돼야 한다”면서 “무차별적인 알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더욱 공개를 어렵게 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보공개 대상과 범위, 방법, 공개된 영업비밀을 추가적으로 보호하는 방법 등이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홍 한국노총 소장은 “공개대상과 범위 등의 절차가 규정될 필요는 있지만 아주 제한적으로 규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고용노동부가 입법 예고한 산안법 전부 개정안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개정안에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와 MSDS 중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전산으로 공개토록 명시돼 있다. 해외 경쟁사가 클릭 한 번으로 국내 기업이 어떤 물질을 쓰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현 김영주 고용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발의한 산안법 일부 개정 법률안도 계류돼 있다. 이 법에는 현재 공개 여부를 놓고 논란이 된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외에도 위험방지계획서, 공정안전보고서 등을 공개 청구할 수 있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산업계는 이 법이 통과되면 기술이 해외로 다 빠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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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를 마련한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은 “그 개정 법안은 과한 감이 있다”면서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할건 해야겠지만 범위를 보완하고 핵심 기술은 보호해야 한다는 선에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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