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유출 방지, 근로자 보호 정책과 관련해 정부 부처 간 조율이 시급 과제로 떠올랐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국가 핵심 기술이 포함됐다는 판정이 나오면서다. 고용노동부가 전면 개정을 추진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산업기술보호법' 취지가 충돌하지 않도록 법제화 논의가 필요하다.
18일 산업부 관계자는 전날 산업기술보호 반도체전문위원회 판정 결과와 관련해 “(이번 판정은) 반도체전문위원회 위원이 이틀 동안 보고서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검토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거친 결과”라면서 “반도체 공정 및 기술과 관련한 많은 정보가 상세하게 포함됐고, 기술 보고서라는 측면에서 국가 핵심 기술에 해당한다고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전문위원회는 참석 위원 전원일치 의견으로 삼성전자의 2009~2017년 화성, 기흥, 평택, 온양 사업장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에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된 '30nm 이하급 D램, 낸드플래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공정 및 조립기술'이 포함된 것으로 판정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보고서 세부 내용 중 측정위치도는 공정명과 공정 레이아웃이 주요 내용으로 하여 최적의 공정 배치 방법을 포함하고 있어 유출 시 경쟁 업체 생산성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공정별 화학물질명과 월 취급량도 공정 노하우와 레시피를 도출할 수 있는 핵심 정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한 전문위원은 '자료가 중국 등 경쟁 업체에 들어갔다면 이는 곧 (우리 핵심 기술을) 드시라는 것'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를 포함했다”고 전했다.
전문위 판정으로 해당 보고서를 공개할 경우 기술 유출 우려가 있다는 삼성전자와 산업계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공은 법원 판결로 넘어가게 됐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전문위원회 결정 내용을 법원에 참고자료로 제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보고서 공개 금지를 요청하는 행정심판, 행정소송을 각각 중앙행정심판위원회와 수원지방법원에 제기했다. 반도체전문위 심의 결과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에 직접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앙행심위 본안 심사와 법원 최종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 대전지방법원과 대구지방법원은 이날 삼성전자가 제기한 작업환경보고서 정보공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정보 공개가 금지된다.
정보 공개 소송 건과 별개로 고용노동부가 전면 개정을 추진 중인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 과정에서 부처 간 조율도 과제로 부상했다.
고용부는 지난 2월 첨단 기업 안전보건 자료를 완전 공개하거나 공개 청구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산안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정보 공개를 법으로 강제하면 우리나라 첨단 기술 보호 체계는 무장 해체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산안법 개정안은 산업기술보호법과 상충돼 법 제정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보 공개 건과 관련해 고용부 측과 여러 차례 협의했고, 지금도 협의체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번 결과를 고용부에 설명했고, 추가로 접촉해 근로자 재해를 예방하면서 산업기술보호법의 취지도 균형 있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고용부가 발의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과정에도 우리의 의견을 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18일 오후까지 향후 계획 등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전날까지는 산업부 의견을 감안하겠다면서도 노동자 우선 원칙을 고수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기술보호위원회 판정에 따른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결과에 따라 부처 간 조율에 나설 전망이다.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 세부 내용별 국가핵심기술 해당사유]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