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전부 개정안과 첨단 기업 작업환경측정보고서 정보 공개로 촉발된 국가 핵심 기술 유출 논란이 정치권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당에 이어 야당도 이 문제를 주요 의제로 삼기로 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 이슈로 부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기업 간 대립 구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임이자 의원(자유한국당)은 오는 25일 '국민안전과 기업기술 보호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다. 작업환경측정보고서 공개와 고용노동부가 입법 예고한 산안법 전부 개정안을 집중 논의한다.
토론회에는 김수근 성균관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좌교수,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권장혁 경희대 정보디스플레이학과 교수, 이정노 전자부품연구원 박사, 경종민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참여한다.
정부와 노동계에서는 박영만 고용부 산재예방상정정책국장, 임성호 한국노총 산업안전국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임이자 의원실은 15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산안법 전부 개정안과 안전보건자료 외부 공개 여부 등이 이슈로 부각되고 있어 자유한국당도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면서 “산업계를 대변하는 이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선거 이전에 행정부와 여당 안에 대응할 수 있는 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여당과 별도로 야당 대응안이 나오면 국회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산안법 개정안 과정에서 논란이 된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우려 문제가 집중 거론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계 관계자는 “여당 의원들과 고용부가 그동안 산업계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면서 기업 비밀을 누구에게나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산안법 개정안을 마련해 왔다”면서 “힘들게 쌓아 올린 기술이 여과 없이 공개되면 해외 유출은 물론 이에 따르는 경쟁력 저하, 일자리 축소 등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고용부는 최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과 삼성디스플레이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삼성과 행정소송 등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고용부는 정보 공개를 법으로 강제한 산안법 전부 개정안도 입법 예고했다. 본지가 고용부 산안법 전부 개정안을 분석한 결과 법안에는 △기업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고용부에 제출하고 △고용부는 제출받은 자료를 전산으로 공개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경우 경쟁사나 경쟁국이 우리 기업의 물질 활용 여부를 온라인 상에서 손쉽게 알 수 있게 된다.
고용부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신창현 의원 등 발의로 국회에 묶여 있는 산안법 개정안을 병합해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강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이 병합 통과될 경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물론 역학조사결과, 유해위협방지계획서, 공정안전보고서 등 각종 기업 기밀 자료가 공개 청구 대상에 포함된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와 공정안전보고서에는 공정 흐름도, 장비 목록, 배치도, 건축물 평면도, 공정설계와 운전 조건 같은 민감한 기밀 정보가 포함돼 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영업비밀 공개 여부는 기업이 아닌 외부인 주축으로 구성되는 위원회가 결정하게 된다.
산업계에선 야당 움직임이 너무 늦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관계자는 “한국당이 이제라도 산업계 얘기를 청취하려는 것은 다행이지만 여당 의원들은 이미 1년 전에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이고, 행정부 역시 개정안 입법 예고까지 마쳤다”면서 “야당이 이 사안을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꼬집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