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규제 공백'을 방치해 준(準)대기업집단 소속 총 714개 계열사가 하도급법 규제를 빠져나갔다. 국회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변경 사안과 연계해 관련 문제를 처리할 심산이라 규제 공백은 계속될 전망이다.
11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대기업집단을 이원화하면서 발생한 하도급법 규제 공백이 2년째 해소되지 않고 있다.
자산총액 5조~10조원인 26개 준대기업집단에 소속된 714개 계열사의 하도급법 위반을 제대로 처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 공백을 없애기 위한 하도급법 개정안이 2016년 발의됐고, 소관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도 찬성 입장이지만 국회 논의가 공회전하며 문제가 장기화 됐다.
2016년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을 이원화하며 규제 공백이 발생했다. 당시 대기업집단 기준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이었는데 이를 대기업집단(10조원 이상)과 준대기업집단(5조원 이상)으로 이원화 했다.
하도급법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 하도급법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집단만 규제한다. 자산총액이 5조~10조원인 준대기업집단은 자연스럽게 규제 적용이 제외됐다. 26개 준대기업집단 소속 714개 계열사에 하도급법상 원사업자 의무를 적용하기 어려워졌다.
하도급법상 원사업자는 △중소기업에 업무를 위탁하는 중견·대기업 △상대적으로 규모(매출액이나 자산총액)가 작은 중소기업에 업무를 위탁하는 중소기업이다.
다만 대기업집단 계열사는 업무를 위탁받는 중소기업보다 규모가 작더라도 원사업자로 본다. 대기업집단 계열사라는 특성을 고려해 규제 대상에 포함한 것인데, 714개 기업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규제를 피하게 된 것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은 규제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다수 기업이 하도급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하도급법 적용 대상을 기존 대기업집단 지정기준인 5조원으로 유지하고자 한다”고 개정안 발의 배경을 밝혔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공정위도 개정에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논의에 진전은 없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규제 공백을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변경 사안과 병합해 심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국내총생산(GDP)에 연동하는 방안, 8조원 규모로 다시 일원화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변경한지 오래되지 않은 만큼 재변경에 부정적 입장이라 합의 도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 변경 문제와 별개로 2년째 계속되고 있는 규제 공백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무위 소위에서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일원화 할 필요성에 동의한다”면서도 “정무위에서 쉽게 결론이 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당장은 규제 공백을 메워놓을 필요가 있지 않은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