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로프로세싱(핵연료 재처리)·소듐냉각고속로(SFR) 연구개발(R&D) 사업 재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파만파다. 3개월 넘게 이뤄진 전문가 재검토 결과는 사업 재개 쪽으로 기울었다. 재검토 보고서는 정부 정책 결정의 발판으로 향후 정부 입장을 가늠하는 잣대다.
재검토 결과가 중요한 것은 사업 재개가 단순 R&D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R&D 로드맵은 실증·건설보다는 원천기술 확보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게 중론이다. 재검토위원회도 그렇게 평가했다.
정부가 이 기술을 '선택'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에서 파급력이 크다. 현 정부 사용후핵연료 정책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의 최대 골칫거리로, 방사성이 매우 높은 고준위 폐기물에 해당한다. 향후 국내에서 발생할 총량은 4만톤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사용후핵연료는 땅에 묻는 '직접 처분'과 파이로 공정 등을 이용한 '재처리'로 처리 방식이 나뉜다. 파이로-SFR 연동 시스템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파이로)해 독성을 줄이고 4세대 원자로(SFR) 원료로 사용하겠다는 아이디어다. 이를 선택하면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직접 처분'보다 '재처리'로 기운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용후핵연료 처리 정책이 명확치 않다. 문재인 정부는 직접 처분과 재처리를 모두 고려하는 기존 정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사용후핵연료 정책이 '기로'에 선 셈이다.
국가 차원 사용후핵연료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이지만 정부가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으면서 밀실 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조만간 사업 재개 여부에 대한 입장을 국회에 전달할 계획이다.
정부 입장은 재검토위 결론을 보면 유추 가능하다. 재검토위는 기술성, 안전성, 경제성, 한미 공동연구(핵비확산성 포함), 사업단 운영 및 향후 계획 5개 분야의 쟁점 사항을 검토해 최종 권고안을 마련했다. 파이로-SFR R&D는 기술뿐만 아니라 안전과 비용 문제를 놓고도 이견이 첨예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사업 찬성 측은 파이로-SFR 기술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부피를 20분의 1로, 면적은 100분의 1로, 독성은 100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 측은 수치가 과장됐다고 지적했다. 재검토위는 찬성 측 수치가 실제보다 과장됐다고 인정했지만 정확한 수치를 예측하려면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핵연료, 소듐 취급에 따른 안전 우려는 기술 고도화로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사용후핵연료는 그 자체로 위험 물질이어서 이를 취급하는 파이로 공정은 위험성을 내포한다. 재검토위는 공정 전 냉각, 피폭량 감소를 거치기 때문에 실제 피해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했다. 폭발 위험이 있는 소듐 취급에 따른 주민 수용성 문제가 있지만 현재는 사고 위험을 낮추는 R&D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찬·반 측이 예상한 파이로-SFR 비용은 900조원 이상 차이를 보였다. 재검토위는 두 주장 모두 불확실성이 큰 만큼 어느 한 쪽 의견에 의존해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파이로 공정의 핵 확산 가능성은 낮지만 향후 기술이 현실화된다면 비확산성을 담보할 규범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재검토위는 이 같은 판단을 토대로 최종 권고문에 2020년까지 사업 지속을 명시했다.
권고문이 나왔지만 재검토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는 오점을 남겼다. 재검토위는 지난해 12월 구성됐다. 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 7인은 찬·반 패널로부터 의견을 청취한 뒤 숙의를 거쳐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반대 측 패널이 위원 명단과 논의 과정 비공개 방침에 항의하면서 파행이 시작됐다. 반대 측 패널은 사업 당사자인 과기정통부가 재검토 작업을 주관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대 측 패널은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과 면담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완전 보이콧'을 선언했다. 재검토는 서면 질의·응답 후 반대 측 패널 불참 속에 진행됐다. 애초 계획됐던 양측 청문과 토론회가 무산됐다. 위원회 측은 무산된 일정을 보완하기 위해 사업단 실사까지 거쳤고 위원 간 토론은 정상 진행됐다는 입장이다.
재검토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반대 측 패널 불참 때문에 재검토 과정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7명 위원 모두 주어진 조건에서 열정을 다해 재검토 작업에 임했다. 마지막 회의 때까지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면서 “국회에 제출된 보고서는 전문가 간 치열한 논의의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