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15일 내놓은 청년일자리 정책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4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중소기업 취업 청년에게 연간 1000만원 이상의 실질소득을 지원하기로 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수준 격차를 줄이는데, 우선 예산을 투입해 초임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중소기업 취업을 유도, 일자리 양극화와 미스매치를 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한시적으로 운영할 수 밖에 없는 대책이라 극단적인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소득격차 관점에서만 '중소기업 기피현상'을 바라보고 있어 자칫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 좀비기업만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되는 등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우려는 산업 현장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취업을 원하는 청년이나 그 부모가 '중소기업은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는 한 중소기업 취업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중소기업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 청년 일자리 정책은 = 청년 실업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면 국가 성장 능력이 저하될 것을 우려한 한시 대책이다. 중소·중견기업이 종업원 1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면 연봉의 3분의1(최대 900만원)을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다. 여기에 소득세를 감면해 주고, 3년 이상 근무하면 기업과 정부가 함께 적립한 공제금으로 3000만원의 성과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청년을 고용한 기업에는 세금 감면 혜택도 제공한다. 중소·중견기업은 3년 동안 1인당 연간 700~1100만원, 대기업은 2년 동안 1인당 연간 300만원의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
종합하면 산업단지 입주 중소기업 신규 취업 청년은 연간 1035만원의 실질소득 증가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 2500만원 수준인 중소기업 대졸 초임 평균 연봉이 3535만원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조상철 대전세종인적자원개발위원회 책임연구원은 이를 '사회적 실험'으로 보았다. '소득격차 줄이기'는 일자리 미스매치와 양극화 해결의 시작이고, 정부가 적극개입해 내린 첫 처방이니 우선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이다.
조 책임연구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소득격차는 인위적으로라도 바꿔야 한다”면서 “중소기업 이미지 개선과 기피현상 등 문화를 바꾸려면 장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업기업 취업률을 높이려면 최소 10년 정도는 필요하고, 소득격차 줄이기로 시작해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도록 복지와 자율성 등을 꾸준히 높여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년일자리 부족은 구조적 문제 = 청년 고용 부진은 1990년대 이후 심화됐다. 1990년 청년 실업률은 6.7%로 전체 실업률은 3.3%에 비해 3.4%포인트 높았다. 이후 격차는 꾸준히 벌어져 지난해는 6.1%포인트 차이를 보였다. 최근 3년간 청년 체감실업률은 2015년 21.9%에서 2016년 22.1%, 2017년 22.7%로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청년 고용부진은 산업, 교육, 노동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일자리 수요부진과 미스매치가 지속된 것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기술혁신과 자동화 등으로 일자리가 감소한데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기존 주력산업의 고용창출력 둔화와 신산업 창출 지체로 민간 일자리 수가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다.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신규채용이 크게 위축된 것도 주 요인이다. 불안한 경제 상황에서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고 창업활동이 부진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반면 대학 진학률은 69%(OECD 43%)로 높아져 대기업과 공공부문에 취업하려는 쏠림 현상은 심화됐다. 지금 20대 후반인 에코세대의 구직활동이 본격화되면 청년실업은 더 심각해진다. 구직활동을 시작하는 25~29세 인구는 지난해 9만5000명에서 올해 11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년 8만3000명, 2020년 5만5000명, 2021년 4만5000명, 2022년 3만8000명으로 다시 줄어들 전망이다.
◇중소기업과 청년 구직자 '동상이몽' =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최근 중소벤처기업 480곳을 대상으로 일자리 미스매치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중소기업이 인력 채용 시 가장 중요시하는 고려사항은 업무능력(53.1%)으로 나타났다. 회사 인재상에 부합하는 인성이 36.7%로 2위, 관련분야 자격증 보유 여부(6.2%)가 3위를 차지했다. 채용을 원하는 직무분야는 기술직(31.3%), 기능직(31.1%), 생산직 종사자(22.6%), 사무직 관리자(13.3%) 등 순이었다.
반면 청년 구직자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선호한다. 중소기업을 두드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생산·기술직보다는 사무직을 원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막연한 불신도 작용했다. 일자리 미스매치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소기업은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원하지만 청년들에게 중소기업은 경력을 쌓기 위해 잠시 거쳐가는 중간 기착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정부의 이번 청년 일자리 정책 실효성에 물음표를 다는 이유다.
◇산업 생태계 복원 시급 =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을 늘리려면 중소기업도 안정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산업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 산업 구조가 중소기업 중심으로 바뀌지 않으면 청년 취업을 담보할 수 없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기업 중심 경제, 개방형 혁신 창업국가 만들기에 적극 나서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심각성을 인지한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도록 기술탈취를 근절하고, 스마트공장 확산 전략을 펴는 것도 산업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한 작업이다.
중소기업 자구 노력도 필요하다. 청년들은 좋은 일자리의 기준을 '급여'로만 보지 않는다. 근무 여건과 복지뿐만 아니라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안정성을 원한다. 급여는 대기업보다 낮더라도 이같은 조건이 충족되면 중소기업을 선택하겠다는 청년이 적지 않다.
일례로 고용노동부와 잡플래닛이 발표한 2017 워라밸(Work&LifeBalance) 실천기업 가운데 최고점(5점 만점 중 4.8점)을 받은 투게더스는 국내 중소형 슈퍼마켓 POS 솔루션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다. 리더를 임직원들이 투표로 뽑는 기업문화와 연차 사용이 자유롭고, 정시 퇴근이 보장되는 등 개인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청년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한은숙 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과 서기관은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 기피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이번 청년 일자리 정책이 중소기업 이미지를 바꿔주는 시작점이 될 수는 있다”면서 “근로시간 준수 등 일·가정 양립 문화를 확산시키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양승민기자 sm104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