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구글·삼성·알리바바는 블록체인에 뛰어들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글로벌 기업이 보이지 않는 블록체인 경쟁에 뛰어든 데에는 블록체인이 가져올 변화가 유관 산업 뿐 아니라 경영 패러다임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세계 각국은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사물인터넷(IoT) 도입 전략을 앞다퉈 추진 중이다.
IoT는 사물, 사람, 데이터를 모두 연결시켜 설비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제조업 혁신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매개가 바로 블록체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산원장이 갖는 기술 특성이 그 핵심이다. 분산원장이란 거래가 발생했을 때 데이터를 중앙집중형 장부에 기록, 보관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거래 참가자 모두에게 내용을 공개하는 분산형 디지털 장부를 뜻한다. 이 기술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를 빼놓을 수 없다.
◇블록체인, 산업에 투영되면 가공할 '시너지'
아직도 열기가 식지 않은 비트코인을 예로 들어보자.
비트코인은 중앙통제기관이 없는 P2P 기반 암호화폐다. 최근 비트코인 연관어로 블록체인이 거론된다.
과거에는 이중 사용 문제 때문에 전자거래에 도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예를 들어 A씨가 인터넷으로 10만원짜리 옷을 주문했다고 가정해보자. A씨의 통장 잔고는 10만원 뿐이다. 용돈이 떨어진 A씨는 거래를 조작하기 위해 판매자에게 10만원을 송금하고 곧바로 본인 명의의 다른 계좌에도 10만원을 송금한다. 컴퓨터 네트워크 특성상 어떤 거래가 먼저 분산원장에 인식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 경우에 어떤 사용자에게는 판매자와의 거래가 먼저 인식되고, 다른 사용자에게는 A씨의 꼼수 거래가 먼저 인식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사용자 간 합의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거래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지 정할 수 없었다. 때문에 판매자가 옷을 보내고도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반면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네트워크 사용자 사이에서 거래 순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 때문에 이중사용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 적용 원리는 간단하다. A씨가 판매자에게 10만원을 송금할 것을 요청한다. 이 거래는 다른 수많은 거래들과 함께 하나의 새로운 블록에 담겨 네트워크에 전송된다. 하지만 참여자들은 해당 블록에 대한 검증작업을 시행한다. 블록이 승인되면 분산원장의 블록체인에 결합하고 송금이 완료된다.
블록체인 적용사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비트코인의 경우, 10분마다 블록이 생성·승인되도록 설계돼있다. 거래가 승인된 이후 6개 블록이 추가적으로 결합되면 거래가 안전하게 이뤄진 것으로 본다. 거래 이후 더 많은 블록이 결합될수록 조작 여력이 떨어진다. 6개 블록이 결합된 이후에는 이중 지불 가능성은 0.1% 이하로 하락하게 된다.
이처럼 공급사슬관리 형태로 적용될 경우 돈의 투명성을 혁신적으로 제고할 수 있다. 이를 산업에 전이하면 제조사, 제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재 등에 대한 정보 파악이 가능하다. 또 제품의 생산·유통·판매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제품 최초 생산자부터 최종 소비자에 이르는 모든 참여자에게 제공된다.
따라서 생산자는 공급사슬상의 전 지점에서 제품 이력을 추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구매자별 구매성향 등을 파악할 수 있다. 블록체인에서 공유되는 개인 정보는 익명이기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 없이도 소비자 맞춤형 마케팅 전략 수립이 가능하다.
구글, 삼성 IBM, 지멘스 등 주요 글로벌 기업이 뛰어든 이유다.
◇기업 넘어 정부도 블록체인 선점 경쟁
기업 뿐 아니다. 정부가 공공서비스부문 블록체인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기업과 함께 표준화 경쟁 등에 박차를 가한다. 블록체인 기술 도입이 공공서비스 부문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해외 여러 국가에서 토지, 차량관리, 선거 관리, 의료정보 등 다양한 공공서비스 영역에 블록체인 기술 적용을 시작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블록체인 도입으로 예산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 대상으로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공유하는 이른바 '공유 정부'이미지 효과를 촉발할 수 있다.
영국 정부는 일반 행정 업무는 물론, 각종 공공서비스 분야에 블록체인 적용을 추진 중이다. 공과금과 과징금 징수, 납세, 시민행정, 여권발급, 토지 등기 내역 등 일선 공공업무와 기록을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또 진료기록 등 의료서비스 내용 통합 관리에도 나설 예정이다.
온두라스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공공기록 관리 체계 도입을 모색한다. 약 800만명이 거주하는 중앙아메리카의 작은 섬나라 온두라스는 부패와 빈곤으로 악명이 높다. 2016년에 발표된 세계 투명성 지수 부패부문 104위를 기록했다. 토지대장 관리가 허술한 온두라스에서는 군벌, 토호세력, 심지어 관료까지 토지 대장을 조작해 일반 농민 토지를 빼앗거나 정부 자료를 해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 대안으로 온두라스 정부는 시스템 해킹이 어려운 블록체인 적용을 추진 중이다. 국가 토지대장 관리를 기존 단순 전산 데이터베이스 방식에서 블록체인 적용 방식으로 전환해 안전한 주택담보대출, 계약, 광물권리에 적용시키겠다는 전략이다.
관련 시스템 개발은 미국 블록체인 개발사 팩텀(Factom)이 맡았다.
에스토니아도 수년전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공공서비스 분야에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시작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가드타임(Guardtime)이라는 기업이 고안한 '키 없는 전자서명 인프라스트럭쳐(KSI)'를 자국 서비스에 전면 적용했다.
KSI를 통해 에스토니아 국민은 정부가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에 개인 정보가 잘못 기재됐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정보접근이 가능한 내부 관리자가 불법으로 정부 네트워크에 침입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해준다. 시민들은 전자상거래 등록, 전자세금계산서와 같은 디지털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러시아는 부정투표 방지, 미국은 우편서비스와 의료 정보 기록, 캐나다는 증권거래소 등에 블록체인을 적용했다.
◇블록체인 생태계, 이젠 주도권 확보가 관건
이제 블록체인은 민간은 물론 공공분야까지 침투했다. 더 이상 먼 미래 기술이 아니다. 금융서비스를 넘어 제조, 공공 서비스 분야까지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다시 말해 블록체인을 활용한 변혁의 쓰나미가 시작됐음을 의미한다. 금융, 산업을 넘어 이제 사회, 시민의 삶에까지 손을 뻗었다.
진보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기업 역량을 발전시켜야 생존한다. 그렇지 못한 기업은 이제 도태될 수 있다.
새롭게 형성될 블록체인 생태계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다. 주도권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해외에서는 블록체인 기술 도입과 적용을 위해 다수 기업들이 협력진영을 꾸렸다. 특히 글로벌 금융사와 IT기업이 폭넓은 개방형 진영을 형성했고 표준화 작업은 물론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다. 삼성 등 국내 제조사들도 글로벌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외연을 넓히고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하다. 현시점에서 블록체인 플랫폼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사업 독점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뒤쳐질 경우 이익을 얻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한국 정부는 기업간 자율적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블록체인 생태계 조성을 지원하고 공공 부문 지원과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특히 규제에 따른 기업의 불확실성이 최소화되도록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 단순한 규제 완화는 해결책이 아니다. 명확한 법적 해석과 구체적인 제도 마련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
기업도 맞춤형 블록체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표준화작업에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도록 기업간 진영을 구축하는데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이미 참여한 대기업이 이끌어야 한다. 블록체인을 기업이 필요한 시점에 언제든 도입할 수 있는 IT기술로 생각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