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철강 관세 면제 협상이 사실상 일괄 타결됐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미 통상 당국과 협상을 마친 후 25일 귀국하면서 “한미 FTA와 232조 철강 관세에 대해 미국과 원칙적인 합의와 원칙적인 타결을 이뤘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지난 한 달간 FTA 개정과 철강 관세 면제를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치열한 협상을 이어왔다. 초반에는 미국이 철강 관세를 압박 카드로 쓰며, 한미 FTA 개정협상까지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판세였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등 대미 무역흑자가 많은 부분에서 일부 양보했다. 철강 관세와 무역구제조치 남발 등에서 유리한 성과를 이끌어 낸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은 세부적 실무 절차를 거친 후 협상 타결을 공식 선언할 전망이다.
우리 정부는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선에서 한미 FTA 개정협상을 타결했다는 분석이다. 당초 미국이 농축산물 추가 개방 등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지만, 정부는 일단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입장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5일 자세한 협상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내 업계에서 가장 우려했던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으로 정부가 일찌감치 우리의 레드라인이라고 밝힌 농업에 대해 “추가 개방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관건은 미국이 FTA 개정에서 강하게 요구한 자동차 부문 협상 결과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자동차다. 자동차는 147억달러, 자동차 부품은 57억달러로 각각 1위와 3위 수출 품목이다. 두 품목을 합친 대미 무역흑자도 182억달러에 달해 사실상 미국의 '눈엣가시'와 같은 상황이었다. 자동차에서 어느 정도 양보하지 않고서는 타결이 불가능하다는 게 통상 전문가의 중론이었다.
자동차 부품 의무 사용과 원산지와 관련해서는 미국 요구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에서 자동차의 역내 부가가치 기준을 기존 62.5%에서 85%로 높이고, 미국산 부품 50% 의무 사용을 요구했다. 또 자동차 부품 원산지 검증을 위한 '트레이싱 리스트(tracing list)' 확대 등도 제시했다. 이 때문에 한미 FTA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동차 부품 업체에 큰 피해가 우려됐다.
미국은 자국 업계가 강점을 갖고 있는 픽업트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철폐할 예정이던 한국산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유지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미국에 수출하는 픽업트럭 모델이 없어 이 요구는 정부가 수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 본부장은 “지금까지 관세 철폐한 것에 대해서는 후퇴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한미 FTA에서 내지 않기로 했던 관세를 다시 내는 일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픽업트럭처럼 아직 철폐하지 않은 기존 관세의 양허 일정 조정은 가능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미국이 비관세장벽이라고 주장한 국내 환경·안전 기준 완화도 수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더라도, 미국 기준을 충족하면 수입을 허용하는 쿼터를 기존 업체당 2만5000대에서 확대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미국 측에 요구한 '불리한 가용정보(AFA)'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등 무역구제 남용에 대한 안전장치와 투자자-국가분쟁해결제도(ISDS) 개선 등이 개정협상에 반영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AFA는 미 상무부가 상대국 기업이 충분한 협조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경우, 제소자인 미국 기업이 제출한 불리한 정보를 사용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기법이다. 미국은 한국산 철강 반덤핑 조사 등에서 이 기법을 적용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철강 관세 유예 조치에 이어 실질적인 협상 성과가 있었던 점에 비춰 미국의 수입규제에 대한 국내 업계 우려도 어느 정도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철강 관세는 한국산 제품에 대해 유예를 넘어 면제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 본부장은 이에 대해 “우리 업계가 안정적으로 미국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김 본부장은 26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협상 결과를 보고하고, 언론 브리핑을 통해 협상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한 통상 전문가는 “구체적 협상 결과가 공개돼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일단 정부가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잘 방어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도 협상 결과에 만족했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우리는 훌륭한 동맹과 훌륭한 합의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양종석 산업정책(세종) 전문기자 jsy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