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학은 '데이터'에 기반을 둔 맞춤형 건강관리·치료가 핵심이다. 양질의 의료 빅데이터 확보 여부가 결과물의 신뢰성을 좌우한다. 헬스케어 기업도 서비스 개발과 고도화를 위한 데이터 수집에 사활을 걸고 있다.
데이터 가치가 높은 만큼 보호의 필요성도 커진다. 신체, 질병, 금융, 신상 정보가 모두 담긴 민감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활용과 보호 가치 간 충돌이 가장 첨예한 영역이다. 전자신문과 라이프시맨틱스가 조사한 개인건강기록(PHR) 인식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개인 건강 정보 활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얼마나 투명하고 올바르게 사용되는지 알고 싶어 했다. 특정 기관에 자신의 정보를 모두 맡기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보는 권리를 원했다. 의료 정보 활용과 보호 사이에서 갈등의 골이 깊은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PHR, 들어 봤지만 정확한 뜻은 몰라
2016년과 2017년에 각각 161명, 152명을 대상으로 두 차례 진행된 조사에서 응답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PHR를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특히 건강상 생애 전환기를 맞은 40대가 가장 많았다. PHR 용어를 들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연령대는 지난해 기준 40대 23.9%, 20대 22.4%, 30대 19.4% 순으로 나타났다. 남성(41.6%)보다는 여성(47.6%)의 PHR 인식이 높았다.
PHR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10명 가운데 1명도 채 안 됐다. 2017년 기준 PHR의 개념과 범위를 정확하게 아는 응답자는 전체 가운데 4.5%에 불과했다. 개념만 알고 범위를 잘 모르는 응답자는 20.9%, 용어만 들어 보고 개념은 모른다고 답한 비율은 74.6%나 됐다.
◇개인 건강 정보 주인은 '나', 개인 동의 전제 활용 'OK'
PHR 소유권은 명확히 '개인'에게 있다고 인식했다. 개인 건강 정보의 가치를 인지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개인 정보 이슈가 확대되면서 소유권에 쏠린 관심도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2016년 조사에서 PHR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다고 답한 비중은 31.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88%로 두 배 이상 높았다. 소유권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고 답한 응답자들은 국가기관(4명)보다 병원(12명) 소유가 맞다고 봤다.
박래웅 대한의료정보학회 이사장(아주대의대 교수)은 1일 “지난해 4차 산업혁명, 빅데이터 이슈가 본격 부각되면서 개인도 건강 정보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면서 “PHR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자기 결정권과 소유권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진단했다.
PHR 소유 주체가 명확히 개인에게 있다고 판단하면서 활용 시 자기 의사가 분명하게 반영되길 원했다. 국가기관이나 의료기관이 PHR를 관리·활용한다면 동의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2017년 기준 각각 8.6%, 2.6%에 불과했다. 2016년에 각각 21.7%, 13.7%인 것을 감안하면 10%포인트(P) 이상 떨어졌다. 반면에 개인 동의를 전제로 허용하겠다고 답한 비율은 2017년 기준 국가기관은 42.2%, 의료기관은 44.7%로 나타났다.
송승재 라이프시맨틱스 대표는 “국가기관 또는 의료기관이 PHR 활용에 동의하는 비율은 줄어든 반면에 개인 동의 아래 활용을 허용하는 응답자가 증가한 것은 개인 건강 정보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강하게 원한다는 의미”라면서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을 추진할 때 개인 동의 절차를 투명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설명했다.
◇헬스케어 서비스 기대 높아, 내 정보도 적극 제공
국가기관, 의료기관에 자신의 개인 건강 정보 제공에는 조심스러웠지만 민간 헬스케어 서비스에는 개방된 태도를 보였다. 내 정보를 제공해서 얻는 이득이 확실하다고 판단하면 기꺼이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으로 분석됐다.
디지털 헬스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서비스 공급자에게 PHR를 제공하겠느냐는 질문에는 78.3%가 제공하겠다고 답했다. 답변자 가운데 여성(32.2%)보다 남성(67.8%)이 서비스 공급업체에 PHR 제공을 긍정으로 바라봤다.
3명 가운데 1명이 개인 건강 정보를 활용, 모바일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었다. PHR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서비스로 관리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32.2%가 '있다'고 답했다. 2016년(16.8%)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편인 30대와 20대가 가장 많았다. 주로 사용한 스마트폰 앱은 삼성·애플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건강 앱이 가장 많았다. 슬립 사이클, 건강보험관리공단 앱, 웰스홈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에 PHR 제공을 원치 않는 응답자들은 개인 정보 유출 우려, 개인 정보 투명성과 보안 필요성을 못 느껴서 등을 이유로 꼽았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자기 주도 건강관리 시대 연다
신체, 진료, 유전체, 생활습관 등 정보를 개인 스스로 활용하는 환경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PHR를 개인이 주도해서 수집, 저장, 관리, 활용하는 플랫폼을 사용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75.7%가 긍정 답변을 했다.
스스로 PHR를 관리할 경우 기대되는 효과는 전체 30.9%가 '내 건강 상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스마트하고 개인화된 헬스케어 서비스 이용(29%) △해외 의료기관 이용, 응급 상황, 사망 후 가족 병력 관리 등 특별한 상황 대비(24%) △의료기관 문턱이 낮아지고 의료 서비스를 쉽게 비교(17.1%)가 뒤를 이었다.
송 대표는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디지털 기기를 접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주류를 이루면서 데이터 가치 인식부터 자기 주도 활용에 관심이 많다”면서 “개인 건강 정보의 자기 결정권이 높아졌다는 것은 건강에 대해 자기가 관리·제어하고 싶은 욕구가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송 대표는 “개인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정책이 요구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자신문 CIOBIZ]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