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업계 팔만 비튼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재료·부품 산업, 즉 후방산업계가 느끼는 현실에서의 어려움은 '신뢰성 평가'라는 장벽이다. 수요 기업 입장에서는 신뢰성을 담보하지 못한 장비·재료로 인해 파생될 엄청난 피해를 우려, 국산 장비·재료 채택을 꺼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생산 라인 성능 평가는 후방기업의 제품 공급에 절대 영향력을 발휘한다. 세계 유수 장비 재료 업체는 테스트가 가능한 독자 공정 라인을 갖추고 있지만 국내 업계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상생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주요 활동으로 장비·재료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 지원을 위한 양산 라인 대폭 개방을 천명한 것도 이 같은 현실에서의 고충을 덜어 주기 위해서다. 지난해까지 연간 평가 횟수가 10회에 그친 것을 올해부터는 100회로 대폭 늘리겠다고 하니 계획대로 진행되면 후방 중소업계에는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인력 양성 사업 계획도 함께 발표, 인력난에 허덕이는 후방업계 지원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업계는 이번 정부 주도의 상생발전위 사업 계획에 불편한 마음과 미심쩍음을 감추지 않았다. 수요 대기업은 충분한 현실성 검토 없이 무리하게 평가 횟수를 정한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후방 중소업계는 세부 실행 계획이 아직 없어 과거처럼 보여 주기 식 정책에 그칠 것을 의구심을 품고 있다. 무엇보다 업계는 정부가 정책만 늘어놓고 예산 등에서는 뒤짐 지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강한 우려감이 감돌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후방산업의 현실과 육성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일각에선 잘나가는 대기업에 왜 정책을 펴느냐고 전후 분석 없는 지적을 하지만 국책 과제 예산이 대기업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용이라는 사실도 정부는 잘 알고 있다.

산업부는 산업 육성 주부 부처다. 산업 정책 목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국회로, 예산 부처로 뛰어야 한다. 국회 눈치만 살필 게 아니라 국민에게도 정책 내용을 제대로 알려야 한다. 여건 조성은 나 몰라라 하고 업계의 팔만 비틀어서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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