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시장이 얼어붙었다. 최근 한강을 꽁꽁 얼린 한파를 떠올리게 한다. 애플 첫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스마트폰 아이폰Ⅹ(텐)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해 1분기 생산량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아이폰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디스플레이 시장에 불어닥친 냉기류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삼성디스플레이 신공장 투자 계획이 여전히 불투명하고 LG디스플레이가 추가 투자를 잠정 보류하는 등 세계 시장을 이끄는 기업이 투자 속도를 늦춘 것도 최근의 변화를 일찌감치 감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이다. 디스플레이 시장의 활황이나 침체와 관계없이 무서운 속도로 설비를 투자하며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시장이 쪼그라들면 투자를 줄이고 체력을 비축했지만 이런 공식마저 중국에는 통하지 않는다.
업계는 과거 반도체 치킨 게임 양상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벌어지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치킨 게임은 자본력도 있어야 하지만 기술력도 필요하다. 중국은 생산 능력으로 한국을 추월할 수 있지만 기술력까지 추월하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최근 급격히 위축된 중소형 OLED 시장을 보면 자칫 치킨 게임을 주도할 국가가 한국이 아닌 중국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든다. 한국이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투자를 주저할 때 중국은 외려 속도를 내고 있다. 선발 주자가 멈칫하는 사이에 격차를 좁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마냥 생산 설비를 늘렸다가 주문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투자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선두가 머뭇거리는 동안 부지런히 뛰지 않으면 따라잡을 기회를 영영 놓치기 때문이다.
업계는 애플이 야기한 냉각기가 상반기 중에 서서히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고작 6개월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선두 주자가 망설이는 짧은 시간에 후발 주자는 선두를 따라잡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