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전제품은 한때 한국 주부의 로망이었다. '월풀'이라는 브랜드가 붙은 냉장고와 세탁기는 한때 예약을 해 놓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최고 제품이었다. 국내 굴지 대기업이 수입 판매하는 제품이었다. 그러던 월풀이었다.
이번 외국 세탁기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세이프가드 발동 배후에 월풀이 있다. 지난 17일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이 한때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던 우리(미국) 산업을 파괴하며…” 발언에 등장하는 '우리 산업'은 '월풀'을 지칭한다 해도 무방하다. 월풀 최고경영자(CEO) 제프 페티그는 트럼프 최측근으로, 미국에서조차 세이프가드 발동 요인이 됐을 것이란 주장이 나온다.
월풀은 100년 된 기업이다. 세계 가전산업의 역사다. 세계 가전업체가 선망하는 기업 스토리가 있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자부심 강한 기업이다. 월풀은 1911년 창업 이래 107년 동안 세계를 앞마당으로 하여 비즈니스를 펼쳐 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추격자와 경쟁자를 제치며 자존심을 지켜 왔다.
그리 하던 월풀이 어쩌다가 국제 경찰로 불리는 자국 정부의 막강한 힘을 빌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기업이 된 것일까. 월풀은 세이프가드를 구걸하고 환영했다. 100여년 동안 자신이 행해 온 기술 경쟁에서 밀리자 곧바로 택한 전략(?)이다. 국제 사회의 냉소와 자국 소비자 욕구를 무시하고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트럼프 정부도 정부지만 그보다 게을리한 기술 개발의 결과를 후발 동종업체 탓으로 돌리는 '존경받는 100년 세계 1등 기업'에 더 차가운 비웃음이 쏟아지고 있다.
세이프가드는 상대국 수출 기업의 횡포로 자국 산업 피해가 현저할 때 발동하는 일종의 비상조치다. 정치·경제·군사 초강대국이라 해도 국제 사회 질서를 감안한다면 선택하기 어려운 조치다. 더욱이 한국 기업은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현지 공장까지 설립하고 있었다. 이번 세이프가드가 미국 경제보다 특정 기업만을 위한 조치로 느껴지는 대목이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미국 정부의 전례 없는 세이프가드는 앞으로의 세계 경제 질서에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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