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인공지능(AI)에 쏠린 관심이 뜨겁다. TV, 냉장고, 에어컨, 공기청정기 등 주요 생활가전을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제어하는 기능은 더 이상 새롭지 않을 정도로 기본이 됐다. 사용자 음성 명령 인식을 넘어 사용자 패턴 데이터를 축적, 기기 스스로 기능을 제어하거나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먼저 제공하기도 한다.
AI 서비스가 확대되면 디스플레이 적용 범위와 기능도 넓어지는 추세를 보인다. 냉장고나 오븐 같은 가전에 정보를 제공하는 디스플레이가 속속 탑재되고 있다.
더 나아가 창문이나 유리를 대체하는 투명·거울 디스플레이, 종이 신문 대신 매일 최신 뉴스를 업데이트해서 보여 주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등 기존에 없던 새로운 디스플레이도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고민도 깊어 가고 있다. 영상을 보여 주는 디스플레이의 고유 기능을 향상시키는 화질, 밝기, 색 표현력 등은 물론 기존에 없는 새로운 기능까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아일랜드'에서는 대형 사이니지가 지나가는 행인의 홍채 정보를 인식해서 이름을 부르고 개인 맞춤형 타깃 광고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용자 위치나 움직임을 인식하고 홍채를 인식하는 센싱 기능이 디스플레이에 융합됐고, 여기서 인식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동안 축적된 방대한 개인 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제품·서비스를 광고한다.
이제는 폼팩터 혁신뿐만 아니라 영상 정보 전달을 넘어서는 기능을 제공하는 미래 디스플레이가 필요하다는 점이 두루뭉술하나마 드러나고 있다. 개인과 가정의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해서 각종 편의 기능을 제공하고, 더 나아가 감성까지 소구하는 새로운 디스플레이 역할이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개별 기술 발전도 중요하지만 여러 영역의 기술이 어우러져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 기업 홀로 고군분투해서는 점점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라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를 디스플레이에 융합해 터치 디스플레이가 탄생했듯 새로운 기능을 융합하는 시도는 점점 많아질 것이다. 요구되는 반도체 기능은 점점 복잡해지고, 기술 난도는 더 높아질 것이다.
기술 요구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성을 고려하는 측면도 더 커질 것이다. 기술 전문가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인문학, 인간학 전문가가 개발에 투입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을 석권한 한국에서도 '차세대 디스플레이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시원한 대답을 듣기 어렵다. 패스트 팔로어이던 한국이 퍼스트 무버로 올라선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이 개척하는 길이 표준이 되고, 미래가 된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우리가 쌓은 역량을 모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시도가 필요한 때다. 안타깝게도 중소기업은 이런 시도를 할 여력이 부족하다. 정부와 대기업이 나서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구체화할 장을 만드는 시도가 많아져야 한다. 기술 기업과 세트 기업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생태계가 더 커지고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배옥진 디스플레이 전문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