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2018년 노동정책, 기업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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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정부 목표에는 공감하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은 근로자를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구직을 원하는 내국인 근로자는 전무하고, 그나마 채용할 수 있는 외국인 근로자도 쿼터가 정해져 있어 대체 인력 확보는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 이미 어려운 상황에다 근로 시간까지 단축되면 폐업 하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입니다.”(경기 안산시 소재 표면처리 중소기업 S사 대표)

최저 임금 인상, 근로 시간 단축 등 문재인 정부의 노동 정책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새해부터 지난해 대비 16.4% 상승한 최저 임금이 적용되면서 산업 현장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고정 비용 상승을 우려해 대규모 감원에 나서는 중소기업이 있는가 하면 올해 자영업자 폐업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3조원 규모의 일자리안정기금 등 정부 대책에도 현장에서는 우려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1주일 최장 근로 가능 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추가 보완책 없이 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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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단체협의회(회장 박성택)가 지난해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국회 근로시간 단축안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최저임금 2020년까지 1만원…한 해에만 10만명 일자리 잃는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가장 큰 고민은 최저 임금 인상이 비단 올 한 해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공약에는 2020년까지 최저 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0년까지 최저 임금이 연 평균 15.7% 인상된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산하 외식산업연구원은 당초 정부 계획대로 최저 임금이 인상되면 2020년까지 총 27만명의 종업원이 직장을 잃을 것으로 추산했다. 올해 10만명이 일자리를 잃는 것으로 시작해 2020년까지 전체 종사자의 13%에 이르는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련 단체는 최저 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면서도 암울한 논평은 섣불리 내놓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일 공식 논평에서 “소상공인은 인건비가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업종의 특성상 경영 환경 부담이 있음에도 정부 정책에 따라 최저 임금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근로자의 소득을 올려서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최저 임금 정책이 본연의 취지대로 구현돼 내수 경기가 활성화되고 소상공인의 체감 경기가 되살아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 중소기업·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핵심 과제로 내건 정책인 만큼 협·단체 차원에서 어두운 논평을 내놓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 “내년의 추가 인상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끔직한'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섣부른 노동개혁, 근로자 구하기 하늘의 별 따기

중소기업의 구직난은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도 동시에 오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대부분은 구직난으로 인해 내국인 근로자 채용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의 중소기업 H사 대표는 “대기업 부럽지 않게 연봉을 준다고 해도 중소기업에는 내국인 근로자가 오지 않는다”면서 “최저 임금 인상에 따른 혜택이 결국 외국인 근로자에게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근로자 30명 미만 영세 기업 보완 대책 마련을 요구한 것도 같은 이유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제조업 비전문 외국인 근로자를 사용하는 기업의 80%는 근로자 수 30명 이하 영세 사업장이다.

최저 임금 인상과 근로 시간 단축으로 인한 구직난이 불 보듯 빤하지만 대체 인력 확보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지 못하도록 한 외국인 쿼터제 때문이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영세 기업에 한해서라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 달라는 의견을 국회에 전했지만 국회와 정부가 보완 대책 마련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면서 “일자리 안정자금처럼 단순한 재정 지원으로 최저 임금 인상과 근로 시간 단축 등 중소기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토로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도 부작용 우려

청소·경비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도 진통이 예상된다. 정부는 공공기관 자회사를 설립해 청소·경비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안을 정규직 전환의 주요 방안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공공기관 산하에 청소·경비 전문 자회사를 설립, 관련 계약은 자회사에 수의 계약 형태로 용역을 주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계는 정부 방침이 현행 법 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판로지원법 상 청소·경비 업종은 중소기업 간 경쟁 품목에 해당한다. 중소기업 간 경쟁 품목은 대기업의 공공 조달 시장 참여를 막기 위한 제도다. 공공기관이 경쟁 입찰 없이 청소·경비 자회사에 수의 계약으로 용역을 줄 경우 판로지원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도 문제 해결을 위해 장관 직권으로 중소기업 간 경쟁 품목을 해제할 수 있는 내용을 판로지원법에 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정부 방침 추진을 위해 법령을 개정하면서 예외 조항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공공기관의 수의 계약 관행이 청소·경비 용역 외에도 여타 중소기업 업무까지 확장될 수 있는 근거를 남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함봉균 산업정책부(세종) 기자 hbkone@etnews.com,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