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음만도 못한 현금 결제

정부가 바뀔 때마다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상생이다. 문재인 정부 이전부터 상생은 화두였다.

상생을 한자로 풀면 '함께 산다'다. 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래에 쓰인다. 대기업만 잘살지 말고 중소기업도 함께 살자는 의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우리 경제에 가장 필요한 이념은 상생”이라고 말할 정도다.

여기서 핵심은 결제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대금을 제때 지급하면 곧 상생이다. 결제 수단이 현금이면 100점짜리다.

일부 대기업은 현금 결제를 강조하며 상생을 외친다. 중소기업도 결제 수단으로 현금을 원한다. 현금 결제가 상생을 대표하는 사례가 됐다. 현금 흐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막상 중소기업에 현금 결제가 좋은 이유를 물어 보면 선뜻 답하지 못한다. 대부분 어음이나 매출 채권보다 안정성이 있고, 말 그대로 '현금'이 들어오기 때문에 낫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에 따르면 현금 결제 지급 기한은 60일 이내다. 60일 안에만 지급하면 현금 결제로 본다. 결국 두 달 후 돈을 줘도 된다는 의미다. 자료가 없는 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어음과 비교해도 나을 게 없다. 어음은 은행에 가서 할인이라도 받는다. 필요할 때 수수료만 내고 즉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현금 결제는 마냥 기다려야 한다. 현금 유동성이 좋지 않은 중소기업은 자칫 경영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지급 기한이 도래해도 안심할 수 없다. 구매 기업 현금 흐름이 좋지 않으면 우선 어음부터 막는다. 현금 결제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현금 결제의 장점은 즉시성이다. 기업이 은행에 이자나 수수료를 떼고서라도 현금을 마련하는 이유다. 필요한 때 사용할 수 없는 현금은 어음보다 못하다. 지급 기한을 줄이지 않는 한 현금 결제가 상생의 조건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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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성장기업부 기자 yuda@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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