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일자리'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생산 자동화와 인공지능(AI) 활용 확산으로 기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융합 기술이 전에 없던 기회를 가져와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고 일자리의 질을 높일 것이라는 기대가 공존한다.
전자신문은 우려보다는 새로운 기회에 주목했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또 다른 가치와 가능성을 찾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다. 어떤 이에게는 4차 산업혁명이 기회로 다가왔지만 다른 이에게는 위협 요인으로 찾아왔다. 이들의 4차 산업혁명 적응기는 현재진행형이면서 미래형이다. 새로운 일자리 지도를 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준비할 실마리를 찾아봤다.
◇'창직(創職)'으로 한 발 앞서
박장환 아세아무인항공교육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서 준비했다. 그는 최근 뜨는 직업 중 하나인 드론조종사 국내 1호이자 첫 교관이다. 드론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던 1999년 이스라엘에서 조종기술을 배웠다.
박 원장은 2003년에 국가 지정 드론 교육기관 '무성항공'을 설립했다. 무인 헬기와 항공기 교육체계를 만들었다. 2006년까지 후배 교관 70여명을 배출했다. 덕분에 국방부가 추진한 무인정찰기 사업에도 참여했다. 지금은 아세아무인항공교육원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박 원장은 “드론은 단순히 조종할 수 있는 기능만 익혀선 안 된다”면서 “조종 외에 드론 운용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능력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12㎏ 이상 대형 드론은 조종면허가 필요하다. 정식 명칭은 '초경량비행장치 자격증'으로 교통안전공단이 맡고 있다. 국내 면허 소지자가 아직 2000명이 안 된다. 면허만 있으면 취업 전망이 밝다.
박 원장은 국내 시장을 넘어 드론 조종 교육 콘텐츠를 수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에 교육원 분원을 설립키로 했다. 유학생도 유치한다. 중국이 드론 생산에만 공을 들인다는 판단에서다. 동남아지역은 교육을 받고 싶어도 인프라 자체가 없다.
그는 “드론 조종 교육은 우리가 중국보다 앞서있다”면서 “수업을 국내 장비로 하면 드론산업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프라인 경험을 온라인 창업으로
이수진 야놀자 대표는 모텔 청소부로 시작해 창업 기업을 일궜다. 이 대표는 대기업이나 성공한 벤처기업 출신 창업가가 아니다. 어려운 형편에 숙식을 제공받기 위해 모텔에 취직했다. 이 때 경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업했다.
이 대표는 2005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숙박공급자를 위한 구인, 부동산 정보 온라인 커뮤니티 '호텔모텔펜션'을 만들었다. 소비자에게 숙박정보를 제공하고 업주에게 운영 노하우를 공유하는 숙박업소 이용후기 카페도 인수했다. 2007년 사명을 지금의 '야놀자'로 변경했다. 2010년부터 모텔 등 중소형숙박 예약시스템을 도입했다. 이후 모바일 시대가 열리자 야놀자 앱을 출시했다.
이 대표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 준 것은 기술 발전에 따른 비즈니스 환경 변화였다. 온오프라인연계(O2O) 서비스 발전은 도약의 기회가 됐다. 그는 오프라인 경험을 온라인에 이어 모바일로 고스란히 옮겼다.
이 대표의 창업은 자기 자신을 넘어 수많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야놀자 직원은 지난해 250명에서 올해 350명 수준으로 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술과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창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능케 한다.
◇패러다임 변화를 새 기회로
김승협 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대한영상의학회장)는 국내 처음 비뇨기 영상의학과 외래진료를 개설했다. 30년 넘게 수많은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을 판독했지만, 외래 진료로 환자와 소통한 것은 처음이다. 직접 환자를 대면해 영상정보 판독과 질병 정보를 제공하면서 또 다른 보람을 느낀다.
김 교수가 외래를 개설한 것은 급격한 의료 패러다임 변화 영향이 컸다. '데이터'에 기반한 정밀의료가 병원에 침투하면서 영상의학과를 포함한 의사 입지가 좁아졌다. AI 시스템이 의료 빅데이터를 학습해 의사가 발견하기 어려운 병변을 알려주고 치료방안까지 제시했다. AI가 의료 현장에도 혁명적 변화를 예고했다.
김 교수는 4차 산억혁명 시대 패러다임 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삼았다. 기존 영상판독만으로는 첨단의료 환경에서 생존이 어렵다고 판단, 영상의학과 의사 역할을 되짚었다.
질병유무, 치료법 도출을 위해 CT, MRI 촬영은 필수다. 하지만 의료진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일 뿐 환자에게는 정보가 상세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의료영상을 촬영하고, 판독하는 영상의학과 의료진이 정보전달 역할을 맡는다면 환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김 교수는 “영상의학이 수치화, 자동화되면서 환자와 교감할 기회는 오히려 줄어든다”며 “AI 시대에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질텐데, 관습적 업무에서 벗어나 환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교감을 통한 치료법을 모색한다면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은 물론 새 시대를 대비하는데 도움될 것”이라고 말했다.
◇AI 로봇이 갖지 못한 것은…
“어서 오세요 고객님. 궁금한 게 있으면 저에게 물어보세요.”
요즘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한 통신사 매장에서는 AI 로봇이 고객을 맞이한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집어 들면 로봇이 달려와 핵심 기능을 설명하고 인기 요금제를 추천한다. 기존에 사용하던 스마트폰 수리를 안내하는 것은 물론 임대폰 서비스 방법도 알려준다. 인간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AI 로봇이 부여받은 임무다. 매장을 찾는 고객은 상담 중인 직원을 기다리지 않아도 돼 편리함을 느낀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23년째 휴대폰 매장을 운영 중인 이종천 대표는 AI 상담로봇 등장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자긍심을 느끼기기도 하지만 로봇에 자리를 내주진 않을까 우려스럽다. 가뜩이나 대기업 직영점에 떠밀려 어려움을 겪는데, 로봇과 일자리 경쟁까지 해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대표는 “20여 년 전 휴대폰 판매업을 시작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자식도 기르고 당당하게 살아왔는데 로봇이 우리 직종을 위협할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모바일, 온라인 판매가 활성화되는 등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로봇 직원 출현이 반가울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로봇이 휴대폰 매장을 찾는 고객 궁금증을 일부 해소하고 각종 서비스를 안내할 순 있지만 '판매행위'로 이어지기까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로봇은 단순 안내, 매장 직원은 고품질 서비스 제공으로 역할이 구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통신서비스업은 기계적인 단순 노동이 아닌, 고객을 이해하고 맞춤형 상품을 판매하는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아직은 로봇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서비스의 본질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