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를 뿌리뽑는다. 이번에 내놓은 '기술 유용 행위 근절 대책'의 핵심은 직권 조사 확대다. 신고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한다. 직권 조사 면제 대상이던 공정 거래 협약 우수 기업도 기술 탈취와 관련해서는 직권 조사를 한다.
대책을 되짚어 보면 그동안 기술 탈취 감시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알 수 있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보복을 우려해 신고를 꺼리는 사실을 알면서도 직권 조사에 미적지근했다. 공정거래협약 평가 대상 절반이 우수 기업이어서 직권 조사를 면제받는데도 보완 조치는 없었다. 공정위의 외면 속에 수많은 중소·벤처기업은 가슴앓이만 했을 것이다.
이제라도 공정위가 강한 개선의 의지를 보인 점은 다행이다. 이번 대책이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기술 탈취는 워낙 은밀하게 이뤄져서 직권 조사로 혐의를 적발하기란 쉽지가 않다. 담합 사건 대부분이 결국 리니언시(자진 신고자 감면제)에 의존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시 조직인 TF 역할에도 한계가 있다. 공정위는 TF의 '과' 단위 확대를 앞으로 행정자치부와 협의할 계획이다. 그러나 이미 기업집단국 설립을 위한 대규모 충원이 예정돼 있어 추가 인력 확보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제3자 대상의 기술 자료 유출 금지, 경영 정보 요구 금지, 기술 유용 조사 시효 연장 등 주요 정책은 하도급법 개정 사안이다. 국회 협조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이번 대책 발표를 공정위 단독이 아닌 당·정 협의 형태로 한 것도 이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 설득이 과제로 남았다.
대책 발표는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공정위의 끊임없는 정책 수정·보완, 범부처 차원의 협력, 국회 설득 적극 노력으로 문재인 정부의 기술 탈취 근절 의지를 증명하길 기대한다.
유선일 경제정책 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