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포럼]살기 위해서는 탈원전 이전에 탈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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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이를 직면했을 때 두려워하고 공포에 질리면 예상치 못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름으로써 심하면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될 수도 있다.

지난 19일은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된 날이다. 우리 원전 역사에 남을 기념일이기도 했지만 이날 대통령의 연설은 원전 사고 공포감을 키웠다. 국민들은 일본 후쿠시마 사망자 수치에 공포를 느껴야 했고, 그 무서운 원전이라는 존재를 떨쳐 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용한 사망자 1368명은 2016년 3월 기준 재해 이후 발생한 모든 사망자 수다. 즉 대피 과정, 대피 후 생활,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한 의료 기관 파괴 등을 포함해 재해 조위금을 지급하기 위해 파악한 모든 사망자 숫자다. 원전 사고로 말미암은 직접 사망자가 아니다.

한강 물이라고 모두 태백산 검룡소에서 내려온 물은 아니다. 이러한 발언은 국민에게 불필요한 공포감을 조장할 수도 있어 매우 아쉽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2013년 유엔 후쿠시마 보고서는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피해를 방사능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인한 피해라고 했다.

일본의 평균 암 사망률은 20~25%다. 가족 수를 고려하면 가족 가운데 한 명이 암으로 사망하는 셈이다. 원전과 무관하게 후쿠시마 인구 17만명 가운데 약 3만명은 암으로 사망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다수는 원전 방사능으로 숨졌다는 얘기가 떠돌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먼저 1368명은 떠도는 소문과 공포의 근거로 활용될 것이다.

가장 피해가 큰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한 유엔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희생자는 진압 요원 28명과 사고 후 20년 동안 발생한 갑상샘암 사망자 15명이 전부였다. 후쿠시마 사고는 사실상 방사능 피해 사망자가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우리 정부는 사고 후 5년 동안 1368명이라고 공식화했다. 비사실에 근거해서 심증으로 결정을 내린 셈이다.

설비를 재정비해서 안전 평가를 받아 10년 동안 무사 운전한 고리 1호기는 마지막 순간에 세월호와 동급 평가를 받았다. 우리에게 세월호는 끝이 없는 아픔이고, 분노이고, 반성이고, 다짐이고, 약속이다. 그러나 고리 1호기를 안전하지도 않은데도 선령 연장을 해 준 세월호에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미국은 88기의 원전이 40년 운영 허가 만료 후 20년 동안 운영 갱신을 허가받았다. 안전성 평가에 철저하다고 생각해 온 미국은 88척이 넘는 '세월호 원전'을 운영한 셈이다. 수명을 연장한 한 가지 요인으로 모든 안전성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앞으로 전개될 정부의 안전 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다. 발전소 수명이 곧 사고 원인은 아니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은 신규 원전이었고, 후쿠시마는 오래된 원전이었다. 연령과 관계없다. 미국은 안전 운영 실적이 오히려 크게 개선됐고, 고리 1호기는 지난 10년 동안 불시 정지가 네 번에 그친 모범 운영 원전이었다. 그나마도 자체 설비로 인한 정지는 두 번뿐이었다.

정부는 사실이 아닌 정보를 유통해서 두려움을 조장하고 이를 탈원전 정책의 동력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원전 사고가 나더라도 대응만 잘하면 공포로부터 오는 불필요한 인명 피해를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정부가 나서서 미리 공포를 조장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공포감에 기대 결정하도록 촉구해서도 안 된다.

정용훈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jeongyh@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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