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반도체 산업과 영업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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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연락하지 맙시다.”

언젠가 어떤 기사를 출고했더니 이런 연락을 받았다. 회사는 누가 이런 민감한 얘기를 기자에게 했느냐며 정보 유출자 색출 작업에 나섰다고 한다. 그 사람과는 연락이 끊어졌다. 잘 넘어갔는지, 그들 표현대로 색출돼 어떤 불이익을 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어떤 대기업은 협력사에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귀사 활동으로 당사의 영업 정보가 외부로 흘러가지 않도록 당부합니다.”

공문을 받아 든 주요 협력사는 외부 투자자 미팅을 자제했다. 국내는 건너뛰고 해외 투자자가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행사를 열었다. 어떤 회사는 협력사와의 계약 공시에 거래 당사자 이름을 제외하라고 요구했다. 협력사 투자자는 반발했지만 최근 그 회사의 장비 구매량이 많으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다. 모 협력사는 공급 사례를 자랑했다가 고객사로부터 거래를 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는 지금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횟수가 잦아지니 그들 입장도 이해가 됐다. 산업계와 특정 업체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요즘 이 선을 가늠하는 것이 더 어렵다. 대기업이든 협력사든 정보가 있는 사람과 접촉하는 것도 어렵게 됐다.

신문 기사로도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최근 반도체 등 첨단 산업계의 동향이다. 그런데 국회는 비밀 여부를 외부에서 심사받으라는 취지의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화학물질 영업비밀 사전심사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미세화 공정 한계로 말미암아 신물질 개발 여부가 향후 핵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물질 하나의 차이가 완성품의 화질, 수명을 크게 좌우한다.

이 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어쩔 수 없이 신물질을 외부에 공표해야 할 일이 생긴다. 단순히 구두로 전해 들은 내용 몇 자를 기사에 옮겨 적는 것하곤 차원이 다른 수준의 원천 기술 유출 위험이 생긴다.

만약 중국이 이런 법 제도를 자국에도 그대로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악용할까 봐 이런 내용을 적는 것조차 두렵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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