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도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아야 한다. 도심에서는 부드럽게 달리고, 고속도로에서는 경쾌하게 주행해야 한다. 또 울퉁불퉁한 오프로드에서는 거침없이 달리는 게 자동차에 바라는 요건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갖춘 차량은 흔하지 않다. 세단은 오프로드에서 주행성능을 100% 발휘하지 못한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투박한 승차감이 단점으로 꼽힌다.
자동차 업계는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도로 사정을 가리지 않는 전천후 차량을 탄생시켰다. 세단과 SUV 장점을 각각 모은 볼보 '크로스컨트리'가 바로 그 차다. 1997년 탄생한 V70 XC는 준대형 왜건 'V70' 지상고를 SUV 수준으로 높여 험로주행 성능을 강화했다. 그 이후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 스바루 '아웃백', 폭스바겐 '올트랙', 푸조 'RXH' 등 다양한 경쟁모델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실용성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갖춘 'E클래스 올터래인'까지 출시했다.
이처럼 크로스컨트리는 시대가 원하는 차량으로 자리잡고 있다. 볼보는 지난해 크로스컨트리 3세대 모델에 해당하는 'V90 크로스컨트리(CC)'를 출시했다. 볼보의 새로운 디자인 철학과 첨단 반자율주행기능, 바워스&윌킨스(B&W) 스피커 등을 접목해 볼보 이미지를 프리미엄급으로 끌어올렸다. 지난 22일 경기도 가평에 위치한 '아난티 펜트하우스'에서 중미산을 넘어 여주 저류지를 다녀오는 총 160㎞ 구간을 시승했다.
이번 시승에서는 V90 CC의 다양한 주행성능을 검증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고속도로와 오프로드에서 볼보 사륜구동 시스템이 얼마나 기민하게 작동하는지 알아봤다. 중미산과 유명산 '와인딩(구불구불한) 코스'에서는 코너링과 핸들링을 살펴봤다. 전체 주행 구간 절반 이상에서는 볼보가 강조하는 반자율주행 '파일럿 어시스트 Ⅱ'를 검증했다.
V90 CC는 정면에서 보면 고급 세단, 옆에서 보면 SUV, 뒤에서 보면 왜건이다. 특히 전면부는 최근 볼보 패밀리룩을 철저히 따르면서 V90 CC만의 정체성을 삽입했다. 그릴은 S90과 XC90 그릴보다 거친 느낌으로 완성하기 위해 그릴 바마다 메탈 장신구 다섯 개로 차별화를 꾀했다. 기존 XC70은 지붕에서 트렁크로 직각에 가깝게 떨어졌지만 V90 CC는 경사를 줘서 좀 더 날렵한 모습이다. 뒷모습은 S90과 XC90 특징을 적절히 섞어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다. 향후 출시할 신형 XC60 형태와 오히려 비슷하다.
실내는 S90에서 선보인 형태와 거의 동일했다. 오히려 인테리어가 세단에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100% 천연 우드 트림을 적용해 따뜻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냈다. 태블릿PC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세로형 9인치 센터 콘솔 디스플레이로 센터페시아 버튼을 최소화했다. 터치스크린 방식은 마찰을 이용한 정전기 방식이 아닌 적외선 방식을 적용했다. 시동버튼은 버튼 방식이 아닌 다이얼 방식이다. 위치도 스티어링 휠 뒤쪽이 아닌 기어노브에 장착됐다.
인스크립션 모델에는 척추를 닮은 인체공학적 시트에 최고급 나파(Nappa) 가죽을 적용했다. 착좌감은 웬만한 가죽소파보다 안락했다. 운전석과 보조석에는 마사지 기능을 추가했다. 뒷좌석에도 동일한 가죽이 적용돼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다만 기존 XC70까지 제공됐던 2단계 부스트시트가 빠진 것은 아쉬웠다. 볼보가 '가족 중심'을 철학으로 내세우는 만큼 향후 연식변경에서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기본 트렁크 용량은 560리터다. 2열 좌석을 모두 폴딩하면 트렁크 용량은 최대 1526리터까지 증가한다. 신장 2m에 가까운 성인이 차 안에서 숙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한 공간을 제공한다. 2열 좌석은 60대40 비율로 완전 폴딩이 가능하다. 트렁크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버튼을 누르는 등 손을 이용하지 않고 발을 움직여 트렁크 뒷문을 열 수 있는 핸즈프리 테일게이트(Hands Free Tailgate) 기능을 지원한다.
V90 CC는 최고출력 235마력, 최대토크 49.0㎏.m 힘을 내는 D5 2.0리터 트윈터보 디젤 엔진을 얹고 있다. D5 엔진은 '파워펄스' 기술을 적용해 즉각 터보 반응을 이끌어낸다. 실제로 고속구간에서는 제원상 출력보다 뛰어난 달리기 성능을 선보였다. 즉각적인 엔진 반응과 사륜구동 시스템은 뛰어난 고속안정성을 제공했다. 다만 저속에서는 종종 8단 자동변속기가 반박자 늦은 변속으로 주행에 이질감이 들게 했다.
준자율주행기능인 '파일럿 어시스트Ⅱ'는 스티어링 휠 조향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파일럿 어시스트Ⅱ는 어댑티브크루즈컨트롤(ACC)과 차로유지시스템(LKAS)을 합친 기술이다. 차로가 뚜렷하고 시속 15㎞ 이상(또는 전방 차량이 감지될 때)에서 이 기능을 작동시키면 자동차가 앞차와 간격을 조정해 가며 스스로 제동과 가속을 번갈아 했다. 스티어링 휠을 놓고 있으면 약 30초 동안 유지됐으며 스티어링 휠에 손만 얹고 있어도 기능은 지속됐다. 다만 분기점이나 경사각이 큰 곡선로에서는 스티어링 휠 조향각도가 차선을 따라가지 못해 제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V90 CC는 오프로드 구간에서 압도적 성능을 보여줬다. 왜건인 V90에 비해 60㎜가량 상승한 지상고는 SUV인 XC90과 비교해 28㎜ 차이밖에 없다. 지상고를 높인 만큼 불안감을 상쇄하기 위해 전·후륜 윤거를 확장하고 타이어 직경도 42㎜ 늘어났다. 반면에 전고는 XC90보다 230㎜ 낮아서 주행안정성은 훨씬 높았다.
19개 스피커로 차안을 콘서트홀로 만들어주는 B&W 사운드 시스템은 동급 최고다. 가격과 옵션을 중시하는 고객에게 안성맞춤이다. V90 CC 시판 가격은 6990만~7690만원이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