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 동안 각기 추락, 전락, 쇠락의 레테르가 붙여져 있던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등 국내 과학 기술 3대 단체가 탈바꿈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총본산으로 불리는 과총(1966년 설립. 학회 등 700여 회원 단체)은 지난 1일부터 3년 임기의 김명자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김 회장은 젊은 과총, 열린 과총을 기치로 내걸며 소통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외교센터·과학기술이슈정보센터 같은 부설 기구를 포함해 인재발굴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와 포럼, 솔루션 네트워크, 태스크포스(TF) 등 19개 신규 조직을 포진시키며 야심 차게 출발했다.
이에 앞서 공학기술계를 대표하는 공학한림원(1996년 설립. 회원 800명)도 지난 1월 취임한 권오경(한양대 석학교수) 회장이 `신산업 발전전략위원회`를 구성, 차기 정부에 신산업육성전략을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은 신기술과 기업가 정신이 만날 때 탄생한다며 젊은 창업가 육성에 힘을 쏟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세계 경제를 견인하고 있는 독일, 중국과의 협력을 추진한다. 공학한림원은 차기 정부에 제시할 정책 총서도 곧 내놓을 예정이다.
과학아카데미를 대표하는 과학기술한림원(1994년 설립. 회원 1000명)은 1년 전 이명철 회장 체제로 출발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연구와 인재를 기르는 기초연구 지원 정책을 다듬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멘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세 단체가 그동안 주목 받지 못한 채 현상 유지에 급급하던 모습과 비교하면 놀랄 만한 변화다. 다만 이들 기관이 프로젝트 가짓수를 늘리며 기능 혁신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같은 대격변기, 패러다임 전환기에는 기본을 다지면서 좀 더 담대한 구상을 보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199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세계 과학자회의는 `사회 속의 과학, 사회를 위한 과학`을 표방하며 과학자 스스로 사회 책임을 선언했다. 일본 학술회의는 최근 과학자의 책무, 공정한 연구, 사회 기대에 부응하는 연구, 법령 준수를 강조하는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전미과학진흥협회(AAAS)는 사회와의 대화, 정책 입안 및 결정자 대상 과학 정책 조언, 여론 대응 설명과 입증을 중요한 과제로 정리했다. 우리 과학기술계가 외면해 온 쇠고기 파동, 4대강 사업 환경 논쟁, 세월호 사건, 조류 독감, 구제역, 녹조 현상이 생각난다.
기관들이 주무 부서인 미래창조과학부와 산업자원통상부에서 일정 예산을 받아 사업을 잘 집행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주 간단한 수식이 있다. 과학 기술 개발에서 `생산성=연구개발(R&D) 투자액×연구 인재 투입량×총요소 생산성(이노베이션 효과)`이라는 공식이다. 언제부턴가 과학기술계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면 투자액을 늘려 달라,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요구부터 나온다. 사회 혁신과 가치관 혁신까지 담는 커다란 이노베이션 효과는 관심 밖이다. 이런 것이야말로 과학기술 단체가 주목해야 할 항목이 아닐까. 과학기술 기본 계획, 과학기술 인재 기본 계획, 지방 과학기술 진흥 종합 계획 등 국가 비전을 업고 가는 리더십도 절실한 시기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일대 테헤란밸리에 자리한 과총 및 공학한림원과 경기도 성남시 판교밸리 권역에 있는 과학기술한림원은 더 젊어져야 하고 더욱더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협업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과학 기술과 시장을 아주 가깝게 만든다. 이제 과학 기술과 산업, 이노베이션이 한 몸이 된 시대다.
곽재원 서울대공대 객원교수 kjwon5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