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건준 신임 벤처기업협회장 "창업기업에 일정 기간 모든 규제 철폐"

안건준 크루셜텍 대표가 벤처기업협회 제9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3만 벤처기업을 대표해 안 신임 회장은 정권과 상관없이 일관된 창업·벤처 활성화 정책이 추진되길 요청했다. 나아가 일정 기간 창업 기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모든 규제를 철폐하는 `창업벤처 규제 모라토리움(규제동결조치) 제도` 도입 검토를 요청했다.

안 회장은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 전환만이 미국, 중국, 일본의 추격 속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하는 벤처기업 발굴과 육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벤처확인제도는 민간에 이양해 현재의 규모나 업종 인증 방식이 아닌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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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건준 제9대 벤처기업협회장(크루셜텍 대표)

-어려운 시기에 벤처 협회장을 맡았다. 벤처기업이란 특성상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부담이 크고, 창업·벤처기업군을 대표하는 일은 더욱 힘들다.

▲크루셜텍은 호서대 창업보육센터에서 사업을 시작해 글로벌 모바일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통상 벤처기업이 겪는 생애 전 과정을 경험했다. 특히 창업보육센터에서 출발한 제조벤처기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일 것이다. 호서대 창업보육센터에 있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아 재능 기부 차원에서 벤처 창업과 기업가 정신을 10년째 강연하고 있다.

스스로 절반의 성공을 이뤄 가는 과정이지만 창업 벤처인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여 주고 성장하는 기업에는 성공 벤처로 가는 기업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특히 후배 창업가에게 생태계 차원의 지원을 더욱 확대해 주고 싶다. 주변 벤처기업인과 명예회장들의 지지가 힘이 됐다. 협회 차원에서도 준비된 정책 콘텐츠가 있어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대선 시계가 빨라졌다. 새 대통령이나 정부에 기대하는 정책, 역량은.

▲한국에는 이미 벤처 창업·육성과 관련한 좋은 정책이 있다. 문제는 법의 실천 의지, 행동이 없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리더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제도가 현실화되는 부분을 제대로 지켜봐야 한다.

무엇보다 창업을 방해하는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17년 전 크루셜텍을 창업할 때만 해도 제도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벤처버블 등을 거치며 많은 규제가 생겨났기 때문에) 지금의 스톡옵션 등은 좋은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조건이 안 된다.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가는 것이 낫다. 변화에 역행하는 규제는 풀어야 한다.

벤처·창업 활성화 정책이나 창조경제도 의지나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축소하는 것에는 반대한다. 더욱 활성화하고 성과가 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가 바뀌어 새 정책을 남발하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현장에서 원활하게 작동하는 수준의 제도 개선과 보완이 더 낫다.

-새 정부 조직에 대한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 전담 부처 승격 등 벤처기업을 위한 더 나은 정부 조직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중소·벤처기업 전담 부처 신설은 반드시 필요하다. 장관급으로 격상하는 것이 맞다.

시대 변화를 고려해서도 우리나라 왼쪽의 중국, 오른쪽의 일본을 봐야 한다. 우리는 벤처기업특별법(이하 벤특법)을 만든 지 20년이 됐다. 중국은 10년도 안 된 사이에 벤처기업 국가가 됐다. 한국과 비교해 사실상 규제가 없는 환경에서 많은 인구를 바탕으로 시장과 벤처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성과가 나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일본이다. 과거의 `늙은 공룡` 같은 대기업 분위기는 사라졌다. 일본을 80차례 정도 다녀왔다. 처음 일본에 간 25년 전과 10년 전, 최근 일본은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

일본의 대기업 2·3세를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의 색깔과 의지가 마치 한국 창업자의 시각과 마인드 같았다. 우리가 흔히 `금수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 정도라면 일본 연구원 출신이나 창업가의 자세는 어떻겠는가.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큰 내수 시장과 더욱 다양한 사업 분야, 좋은 분위기에서 정부의 강력한 지지까지 더해지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다. 장관급 정부 조직이 아니라면 걱정된다.

중국의 대표 벤처 기업인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도 얼마 전까지는 우리 회사보다 작았다. 세계 기업이 됐어도 여전히 벤처 기업이다. 정책은 대·중·소 사이즈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커졌다고 산업통상자원부 소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산업부의 좋은 정책과 조직이 중소기업부와 잘 융합해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조직과 정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처 신설이 어렵다면 중소기업청이 타 산업 부처와 대등하거나 독립된 지위를 보장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회 상임위나 수석비서관실 설치 등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벤처업계에서 올해 가장 중요한 사안이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이다. 벤처 3기 정책에서 핵심으로 생각하는 부분과 벤처확인제도 개편 방향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1997년에 제정된 벤특법은 지난해에 2027년까지 연장됐다. 올해 법 세부 콘텐츠 개편 작업이 있다. 개별 기업 지원 정책에서 강력한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앞으로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해서도 벤처 기업이 주도하도록 바뀌어야 한다.

벤특법을 만들고 20년이 지났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다. 모든 시장은 벤처 기업이 시작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해서 대단한 기술이나 발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한국과 세계에서 새롭게 성장하는 부분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융·복합에서 시작된다. 제도도 현 시대에 맞게 바꾸면 된다.

벤처확인제도는 근본 변화가 필요하다. 그동안 벤처확인제는 규모와 업종 중심으로 이뤄졌다. 벤처 확인 기관인 기술보증기금에서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앞으로 벤처 기업은 규모나 업종으로 구분하는 것보다 기업 속성으로 구분해야 한다. 기업 역량으로 봐야 한다. `본(born) 글로벌` 전략에 맞춰 고성장을 추구하는 기업군 선발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것은 정해진 틀에서 움직여야 하는 공무원식 사고로는 불가능하다.

벤처확인제도를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가 주도한다. 위원회는 정부와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민간이 모두 참여한다. 무엇보다 현실과 현장을 아는 단체가 벤처확인제를 해야 한다.

-벤처협회장으로서 세계 최고의 벤처 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벤처창업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우선 제도가 잘 자리 잡아야 한다. 제3기 벤특법 선진화가 당면 과제다. 법안 자체가 현실에 맞게끔 선진화돼야 한다.

또 글로벌 벤처 성장 사다리가 필요하다. 국내에 머물러 있는 벤처 기업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협회 차원에서 만들어진 `글로벌 벤처스` 같은 플랫폼이나 콘텐츠를 널리 홍보하고 활용·협력하는 데 집중할 것이다.

무엇보다 생태계 차원에서 혁신 기술 공정 경쟁 기반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 간 상생 환경 문제다. 미국은 물론 중국에 비해서도 부족한 부분이다.

창업에서 기술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도 가치가 있고 연구개발(R&D)과 사업을 위한 과정도 가치가 있다. 그런 과정의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가 돼야 인수합병(M&A) 마당도 생긴다. M&A는 완성된 회사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부분에선 사고방식이 중국보다 뒤떨어졌다.

얼마 전 애플이 200만달러를 들여서 얼굴 인식 기술이 있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을 샀다. 애플 입장에서는 큰돈도 아니고, 기술이 뛰어난 기업도 아니다. 미국은 2000만달러, 2억달러 규모의 회사만 사는 것도 아니다. 자기 나라도 아니라 이스라엘에까지 가서 사는 문화가 있다. 우리는 한국 생태계에 있는 회사를 돌아보는 문화나 노력도 부족하다. 한국 회사의 가치를 폄하는 사고방식이 있다.

돈이 많다고 해서 사업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돈보다 사업을 움직이는 그릇 문제다. 페이팔 창업주는 페이스북에 50만달러를 초기 투자했다. 그것은 나중에 몇 천배로 돌아왔다. 거대하게 성장한 회사만 아니라 아이디어 차원에라도 투자하면 얼마나 많은 씨앗이 뿌려지겠는가.

한국은 벤처 기업의 회수 시장이 기업공개(IPO) 시장밖에 없고, 너무 오래 걸린다. 더 많은 씨앗이 뿌려질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 구글과 페이스북이 나온 것은 그들이 천재여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많은 씨앗이 뿌려졌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성공한 것만 M&A되는 것은 아니다. 생태계 인프라로 혁신 거래소가 필요하다. 매수자와 매도자에게 확실하게 세제 혜택도 제공하고, 회수 전용 펀드도 있어야 한다.

-벤처 기업은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하는 기업인 만큼 기존 제도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규제 철폐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중국이 대표 국가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 경쟁을 많이 한다. 회사끼리의 경쟁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는데 주변 환경에서 너무 밀린다. 부작용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발생한 부분을 보완하면 된다. 처음부터 `이것은 안 돼`라고 하니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창업벤처 규제 모라토리움`이 필요하다. 국가 안전을 위한 특별한 상황을 제외한 것은 다 풀어 주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물론 3년 등 일정 기간을 둔다. 영원히 둘 수는 없다. 그 회사가 성장하면 그때 보완하면 된다.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규제 개선도 필요하다. 과거 대기업에 있던 사람들이 과감히 벤처 창업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은 성공의 목마름이다. 이전의 스톡옵션 제도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스톡옵션 제도는 유명무실하다. 일반스톡옵션을 부여받은 근로자는 스톡옵션 행사시 실현이익이 발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득세를 납부해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 최근에 이를 근로세가 아닌 양도세로 납부할 수 있게 고쳤는데 이게 또 기업 부담으로 돌아갔다. 근로세를 납부하는 일반스톡옵션은 손금산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양도세로 납부하는 적격스톡옵션은 회사 손금산입이 불인정되므로 스톡옵션 도입에서 회사와 개인 간 이익이 충돌해 도입을 꺼리게 된다. 우리나라가 제도를 벤치마킹한 미국 적격스톡옵션(ISO)도 이러한 문제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회사도 스톡옵션 발행이 부담이 되고, 개인도 향후 차익실현의 보장도 없이 소득세를 먼저 납부해야 해 실익이 적다.

2006년까지 시행하던 행사 가격 5000만원까지 비과세 제도를 도입하고 적격 스톡옵션 부여 금액의 회계상 손금 산입이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스톡옵션은 급여, 복리후생, 사회적 평판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벤처기업이 우수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제도다. 과거 일몰 이전처럼 우수인력이 스톡옵션으로 대기업 연구소를 포기하고 벤처기업을 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제도가 정비돼야 시장에서 정책적 목표가 달성될 것이다.

-벤처 창업 환경에서 외형 성장은 있었다. 내실 성장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하는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해외 시장을 생각해야 한다. 분식집도 해외 나갈 때 메뉴판을 해외향으로 개발한다. 규모나 업종 문제가 아니라 마음가짐 문제다.

자체 기술 개발 역량이 필요하다. 한국 제조 벤처의 싹이 말라붙었다. 모든 산업의 기본은 제조업이다. 제조 벤처의 싹이 무너지면 대기업도 압박을 받는다. 사라져 가는 제조 벤처 확산이 필요하다. 대기업 하청 역할만 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만들면 기술 개발이 필요 없다.

출연연의 역할도 중요하다. 과거 출연연은 대기업과 일했다. 지금은 중견·중소기업과 함께 일하지만 성공 사례가 없다. 성공 사례를 빨리 발굴하고 홍보하는 등 현실감 있게 지원해야 한다.

-후배 벤처 기업인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조급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은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트렌드를 보고 지금의 작은 어려움과 위기를 극복하면서 가면 된다. 기업은 쉽게 망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한국은 정부와 협회, 유관 기관이 생태계를 만들어 간다. 지원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겠다`는 독한 의지나 열정도 한국 사람이 최고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의 선두가 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씨를 뿌려라.


김명희 기업/정책 전문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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