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에 목사 두 명이 찾아왔다. 지독한 목감기였다.
첫 번째 목사를 진료한 의사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마세요. 목에 무리가 와서 증상이 심해집니다”라고 처방했다. 두 번째 목사에 대해서는 이렇게 처방했다. “설교 시간을 줄이세요. 설교를 길게 하면 목에 무리가 와서 더 나빠집니다.”
두 명의 목사가 돌아간 후 간호사가 의사에게 물었다. “두 분 다 같은 증상으로 왔는데 왜 처방은 다르게 내리지요?”
의사가 말했다. “두 번째가 우리 교회 목사거든.” 설교 시간이 짧은 교회를 선택하는 교인이 있다고 한다.
식순에 축사, 기조연설, 취임사, 이임사 등 스피치 종류만 네댓 개가 넘는 모임이 있다. 축사도 1, 2, 3이 등장한다. 건배사를 한답시고 나간 사람이 장황한 스피치를 한다. 팔은 아파 오고, 들고 있던 술잔이 내려진다. 성질 급한 나는 기절할 지경이다. 듣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서로 말하겠다고 난리다. 건배사에서 정치 이야기까지 한다. 현직 단체장은 연설 때마다 화제다. 그의 연설은 서울에서 수원을 지나 호남선과 경부선을 오고 간다. 언제 제자리로 돌아올지 모른다. 그가 마이크를 잡으면 직원이나 회원들은 공포에 떤다.
저녁 만찬장에서 청중의 머릿속에는 밥은 언제 먹을지, 무슨 요리가 나올지 뿐이다. 연사 한사람이 5분을 넘기면 지겨워진다. 졸기 시작한다. 삼삼오오 이야기하느라 스피치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말 또 하는 사람, 맺고 끊는 것 없이 장황히 펼쳐 놓는 사람. 웃긴다고 꺼낸 유머가 아재개그, 그것도 쌍팔년도 냄새를 풍긴다면 모임은 지겨워진다. 다음 번 모임에는 핑계를 대고 빠지고 싶다.
엄마 잔소리가 지겨운 이유는 뻔하고 재미없어서라기보다 한마디로 끝낼 얘기를 계속 반복하기 때문이다. 잔소리는 같은 레퍼토리다. 내용이 좋아도 두세 번이면 족하다.
스피치도 길어지면 잔소리가 된다. 길어질 것 같으면 아예 스피치를 안 하면 된다. 간결하다는 느낌을 주려면 서론과 결론이 짧아야 한다. 서론이 길어지면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청중은 집중력을 잃는다. 결론이 길어지면 청중은 끝날 시간만 기다린다. 시선은 시계로 향한다.
핵심을 찌르려면, 감동을 주려면 3분이면 된다. 3분 이내에 스피치를 끝내고 일어나자. 차라리 3분 동안 스피치한 사람을 만나서 악수를 하는 게 더 감동을 준다. 서론 30초, 본론 2분, 결론 30초면 충분하다.
스피치에서 3분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주의력 때문이다. 3분이 넘으면 청중의 주의력은 산만해진다. 남의 말을 듣는 데에는 화자보다 3배 이상 에너지가 필요하다.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이 더 힘들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 해전을 앞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조선 수군을 향해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라고 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란 뜻이다. 3분이 아니라 3초 스피치다. 짧을수록 결기가 느껴진다.
영화 `300`에서 테르모필레 전투를 앞두고 부하에게 짧지만 강한 메시지를 남긴 레오니다스 왕의 대사가 인상에 남는다.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라, 저녁은 지옥에서 먹게 될 테니.” 애국심이 치밀어 오른다.
긴 말이 필요 없다. 역사 속 리더의 말은 강하고 짧다. 현대인에게 10분을 넘기는 스피치는 민폐다. 장황한 설명이나 부연 설명은 좋은 감동을 못 준다. `진정성` `진실`이 느껴지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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