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포럼]전력 수요관리는 무형의 발전소 짓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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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신기후체제로 진입하는 파리기후협정이 지난 11월 4일 발효됐다. 온실가스 최대 배출 국가인 중국, 미국, 인도, 유럽을 포함해 72개국이 비준함에 따라 협정의 발효 조건이 모두 충족됐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37%를 줄이는 내용으로 올해 안에 비준할 계획이어서 이제는 변화가 시급하다.

에너지 분야에서의 신기후체제 대책은 공급 측면에서는 화석연료 발전소를 점차 줄이고 태양광발전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이며, 소비 측면에서는 수요 관리를 통해 효율 운용을 하는 것이다. 수요 관리는 특정 시간에 수요를 감소시킴으로써 에너지 부족분을 회피하는 방식인, 발전소를 증설해서 공급량을 늘리는 공급 관리와 상반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런 수요 관리를 제대로 운영하면 공급 관리 영역의 발전소를 덜 지어도 된다. 결국 사용자가 현명한 소비로 발전소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전력망 운용은 가용한 발전 설비 용량인 `공급 능력`을 사용량이 가장 높은 시점의 전력량인 `최대 전력`으로 나눈 `예비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최대 전력(피크)은 순간 최대치를 기록한 시점의 전력량으로, 한 달에 한 시간일 수도 있고 일 년에 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국내에서 석탄발전소를 증설하는 주된 근거는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공급 능력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여기서 수요가 증가한다는 증거의 하나가 최대 전력이 매년 높아진다는 점이다. 수요 관리를 통해 일 년에 몇 번 발생하지 않는 이 최대 전력을 낮추면 예비율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공급 능력, 즉 발전소를 줄일 수 있게 된다.

또 수요 관리를 이용하면 예비율 자체도 감소시킬 수 있다. 예비율은 전력망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추가로 발전해 유지하는 전력량이지만 달리 말하면 비용과 환경을 희생하며 전기를 생산했지만 쓰지 않고 `버려지는 전력량`이기도 하다. 예비율이 52.4%이던 지난 1월 10일에는 발전 전력의 절반 이상을 버린 경우다. 2013년 8월 12일에는 예비율이 5.6%까지 떨어지는 등 전력 위기 직전까지 몰린 상황이었다. 예비율의 변동 원인은 폭염 같은 외부 요인도 있지만 사람들이 동일한 시점에 냉난방을 하거나 공장들이 동시에 생산을 늘리는 사용자 행동 패턴의 동시성도 작용한다. 소비·공급의 양방향 실시간 수급 정보를 교환하는 수요 관리를 통해 이러한 동시성을 분산시킬 수 있다. 또 예비율이 낮을 때는 수요 관리로 최대 전력을 줄여서 단시간에 안정성을 확보하고, 예비율이 높을 땐 이 정보를 활용해 사용량을 늘리고 낭비를 줄이면 그 결과 실시간 수급 정보에 기반을 두고 전력망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예비율 자체를 감소시킬 수 있다. 현행 예비율 기준 30%를 10% 낮게 유지하면 원자력 발전소 8기 또는 석탄발전소 16기를 꺼도 된다는 얘기다.

수요 관리 시장은 2013년 11월 개설 이후 올해 5월까지 등록 용량이 3.27GW다. 이는 원자력발전기 3기에 상응하며, 최대 전력 80GW인 경우 약 4%에 해당하는 피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수요 관리 상품은 1시간 전에 긴급 절전하는 `피크 감축 DR`와 하루 전 입찰에 참여하는 `요금 절감 DR` 두 가지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6월부터 소규모 전력 사용자에게 더 큰 편익을 제공하는 `중소형 DR` 상품을 도입, 가정·상가 등 일반 사용자도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수요 관리의 효율 운용을 위해서는 시장 운영자의 규정에 근거한 비상 발령과 공정한 입찰 시스템이 필요하며, 수요 측면에서도 사용자의 행동이 전력망 정보에 연동해 변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여름철에는 공공기관의 냉방 온도를 무조건 28도로 강제하고 있지만 이러한 절전 운동은 효율 운용에 역행한다. 전력망의 예비율 정보를 기반으로 피크 상황인 때는 절전하지만 피크가 아닌 때는 오히려 자유롭게 냉방하는 스마트한 소비를 통해 업무 효율을 높여야 한다. 나아가 지금은 대부분 산업계가 수요 관리 정책에 참여하고 있지만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비롯해 전기자동차 및 상업 빌딩과 더 나아가 일반 아파트나 주택이 참여하고 에너지 사물인터넷(IoT) 보급으로 전력 기기들이 직접 전력망 정보에 스스로 실시간 연동하게 되면 전력망의 안정과 예비율 최소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으며, 화석연료 발전을 큰 폭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김구환 그리드위즈 대표 david@grid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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