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임기 중 처음으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비선실세 의혹을 받는 최순실 씨에게 각종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을 건네준 것에 대해 일부 인정까지 했다. 하지만 세부 의혹에 대해선 구체적인 설명이 전혀 없어 국민적 원성을 잠재우기에는 부족했다. 사적 관계와 법적 책임을 모호하게 만드는 `사과문`으로 오히려 정치적 부담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저로서는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순실 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면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 있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은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전날 모 매체가 최순실 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사전 열람한 것은 물론 인사자료까지 받아봤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자료를 공개한 후 20시간여 만에 이뤄졌다. 보도 이후 박 대통령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을 방관했다는 의혹이 커져갔다. 이날 정치권은 일제히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에 대해 박 대통령이 직접 해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여야는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을 요구했다. 새누리당은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로 최 씨와 관계를 인정하자 곧바로 국민에게 사과했다. 김현아 대변인은 “집권여당으로서 작금의 사태에 대해 국민에게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또 “그 많은 문건이 계속 유출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진상규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국민의 우려와 심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엄중한 후속조치를 당내 의견을 모아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사안의 심각성을 대통령이 받아들였으니까, 거기에 대해 맞는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국민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것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후속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비박(비박근혜)계 중진인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당내 처음으로 박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김 의원은 “최순실 사태는 대통령 사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 시작되는 것”이라며 “여야가 특검 도입을 합의하면 공정하고 엄정한 수사를 위해 대통령이 당적 정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물론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등 전원 퇴진을 포함한 청와대 전면 개편을 요구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도 “대통령의 사과 발언은 최순실 씨와 관련한 여러 의혹에 대해, 불법 여부에 대해 전혀 설명이 안 됐다”며 “이 문제는 대통령의 오늘 사과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 할 수 있는 건 국정조사를 하고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것이니 (국회가) 그대로 진행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당도 구체적인 해명이 없는 사과문이라며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자를 엄중히 문책하고 청와대 참모진들의 사퇴까지 촉구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우리는 대통령의 개인 심경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며 “참으로 유감이다. 지금 이 나라는 어느 누구도 질서를 바로잡지 못 한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속속 밝혀지는 최순실 게이트 실상은 차마 부끄럽고 참담해 고개를 들 수조차 없는 수준으로, 우리 헌정사에 이런 일이 없었다”며 “최 씨를 즉각 귀국시켜 수사 받게 해야 하며, 우병우 수석을 포함해 비선실세와 연결돼 국정을 농단한 청와대 참모진을 일괄 사퇴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변명으로 일관하기만 하고,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도 받지 않았다”며 “최순실 씨로부터 선거 때와 초창기에만 도움을 받고 그 이후에는 도움을 안 받았다는 것을 누가 믿겠나. 최 씨는 최근까지 미르·K스포츠 재단을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지 않았나”고 반문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도 “국정농단의 주범인 최순실을 감싸기에 급급했다”며 “국민을 철저히 우롱한 회견이며 일곱 문장의 눈가림으로 무마될 일이 아니다.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성현희 청와대/정책 전문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