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배임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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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경영자(CEO)의 자리는 판단이 주 임무다.

투자를 결정하거나 사업을 매각하는 굵직한 건은 물론 승진자를 고르고 부서 배치를 바꾸는 것까지 모두 판단 영역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모든 결정이 옳을 수는 없다. 정반합을 통해 최선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은 CEO의 판단이 잘못될 경우에도 대비한다. 임원 회의도 하고 외부 경영컨설팅을 받는다.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거쳐 CEO의 결정이 옳은지 평가받는 과정도 거친다.

CEO의 결정이 그릇된 경우 `배임`이라 한다. 배임의 사전상 의미는 주어진 임무를 저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회사 경영자나 공무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고의로 잘못된 결정을 내려 기업이나 회사에 손실을 주는 경우다.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신 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혐의를 적용할 예정이다. 롯데 계열사 유상증자 과정에 관여하고 친인척 기업에 일감을 몰아 주는 등 계열사 간 주식과 자산 거래 과정에서 수백억원대의 손실을 끼친 혐의다. 과도한 급여나 보수를 받았고, 결정 과정에서 기업보다 자신과 총수 일가에 유리한 결정을 내린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과 법원 판단에 따라 재벌 중심의 우리나라 기업 문화에도 적잖은 변화가 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기업청은 한 홈쇼핑 대표를 업무상 배임죄로 검찰 고발을 권고했다. 홈앤쇼핑이 지난해 하나투어와 컨소시엄을 이뤄 면세점 특허권을 획득한 후 다시 지분을 청산한 것을 문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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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앤쇼핑은 컨소시엄이 중소기업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투자 부담이 커서 출자를 철회했다고 해명했다. 투자를 거둔 시점이 지난해 면세점 사업자 선정보다 일찍 이뤄졌고,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할 경우 발생할 사업 손실까지 염두에 둔 결정이라는 것이다. 실제 SM면세점의 최대 주주인 하나투어 주가는 지난해 7월말 주당 20만5000원까지 치솟았으나 이후 급격한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10개월여만인 지난 9월19일 기준 6만9800원으로 약 66%의 주식가치가 감소했다. SM면세점은 올 상반기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추가 유상증자에 참여, 200억~300억원을 투자했더라면 더 큰 손실을 보았을 수도 있었다.

CEO의 배임 행위에는 당연히 일벌백계(一罰百戒)가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가 건전해진다. 그러나 과도한 배임죄 적용은 큰 결정 자체를 막을 우려가 있다. 삼성이 반도체사업에 진출할 때, 현대가 중동에서 대형 건설 사업을 시작할 때도 주변에선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CEO의 뚝심으로 추진했고, 지금의 성과를 거뒀다.

사회 전반에 걸쳐 배임의 판단 기준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고의성 여부와 결정이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했느냐가 핵심으로 보인다.

우리 정치권에서는 배임죄 완화를 위한 법 개정 움직임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 세계 추세는 경영 판단에 대해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쪽에 무게가 쏠린다. 100년 전에 배임죄를 처음으로 적용한 독일은 경영 판단 원칙을 도입한 이후 처벌 사례가 크게 줄었다. 일본은 `명백히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어야 처벌한다`는 조항을 명문화하기도 했다.


김승규 전자자동차산업부 데스크 se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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