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균 9.8% 고공 성장 중인 바이오헬스산업. 세계 시장에서 국내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불과하다. `제4차 산업혁명`은 바이오산업 변방으로 취급받던 우리나라가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절호 기회다.
6일 공식 출범한 바이오혁신리더스포럼은 혁신의 길목에 선 한국 바이오산업을 진단하고, 발전방향을 모색했다. 국회, 정부, 연구기관, 병원, 산업계 바이오 전문가가 집결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 발전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중점적으로 논의된 내용은 4차 산업혁명 패러다임을 태동기 한국 바이오산업에 미치는 영향이다. 4차 산업혁명은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3D프린팅 등 정보통신기술(ICT)이 각 산업에 침투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만드는 혁신이다. 광대한 분야에 동시다발로 침투, 변혁을 예고한다.
미래 바이오산업 경쟁력도 4차 산업혁명 대응에 달렸다. 웨어러블 기술, 빅데이터 등을 이용해 커넥티드 홈을 구축한다. 몸이 불편하거나 환자를 ICT로 돌볼 수 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가 가능해 국가 재정 건전성에도 기여한다. 신약 개발 경쟁이 주도하는 바이오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진 ICT로 미래 바이오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서정선 바이오혁신리더스포럼 의장은 “그동안 국내 바이오산업에서 지속됐던 패스트 팔로워(추격자)에서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4차 산업혁명”이라며 “세계수준 ICT 역량을 바이오에 접목해 신약개발, 정밀의료, 농생명 바이오 기술을 축적한다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승욱 전자신문 편집인도 “우리나라는 ICT 분야에서 세계 유례없는 성공 경험을 보유했다”면서 “첨단융합산업인 바이오 영역에도 성공 경험을 이식한다면 3~4년 내에 세계 수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산업계 “K-바이오, 글로벌 진출은 필수…정부가 여건 마련해야”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바이오 시장은 3924억달러(약 434조1513억원) 규모다. 2017년 4681억 달러(약 517조7186억원)까지 성장해 연평균 9% 이상 성장세가 예상된다. 바이오헬스케어 시장만 하더라도 2014년 기준 약 1조4000억달러로 우리나라 3대 수출산업(반도체, 화학제품, 자동차)을 합한 규모(약 1조5000억달러)와 맞먹는다.
국내시장은 태동기다. 2011년 기준 국내 바이오시장 규모는 3조7741억원으로, 세계시장 1% 남짓에 불과하다. 지난해부터 한미약품, 셀트리온 등이 기술수출과 자체 의약품 개발로 글로벌 시장 진출이 시작됐다. 국내시장 성장률도 2%대다.
기업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정부도 세계 7대 바이오강국 실현을 외치며 기업 해외 진출을 유도한다. 하지만 내수시장에서 확실한 캐시카우가 없는 한 위험요소가 많다.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 국내에서 충분한 레퍼런스를 구축할 인프라도 필요하다.
윤호열 삼성바이오로직스 상무는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미래 산업지형은 승자독식 체제가 굳어지며 1등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면서 “기업도 글로벌에서 경쟁해야 하는데, 여기서 1등을 하기 위해서는 체력을 키울 수 있게 정부가 연구개발(R&D)과 행정지원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을문 서린바이오사이언스 대표는 “바이오는 고령화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 훌륭한 복지요소인 동시에 수명연장을 위한 보건 영역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의지를 갖고 육성해야 한다”면서 “보건, 복지는 물론 산업 잠재력도 커 체계적인 지원을 펼칠 수 있도록 민간에서도 논의가 활발히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개선도 주문했다.
김정한 아벨리노 대표는 “세계적인 석학이 모인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인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유전체 분야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며 “우리나라는 유전체 분석에 핵심이 되는 빅데이터 영역에 각종 족쇄가 채워져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재숙 아이센스 이사는 “정부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 제도개선과 지원을 약속했지만 국내에서는 원격의료 금지 등 여전히 많은 규제가 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사업을 추진하는데, 국내에서도 사업을 전개할 수 있게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막연한 연구개발은 지양, 명확한 목표설정과 사업화 연계가 중요
선진국 바이오 정책이나 트렌드만 쫓아서는 시장을 선도할 수 없다. 정부는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영역을 명확히 설정하고, 기존 기술을 상업화 단계까지 이끄는 지원도 필요하다.
선경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은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은 정부와 민간기업이 투자한 금액 대비 사업 성공률이 매우 저조하다”며 “3대 장애물로 지적되는 데스밸리를 해소할 정책적 지원은 물론 바이오 벤처를 지원할 산업 전 주기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술개발까지 완료했지만, 실제 시장에 나오지 못하고 사장되는 사례가 많다. 중소기업이 가진 한계 때문에 상업화를 위한 임상, 인·허가, 마케팅 단계를 추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상업화 단계까지 이어주는 연계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에 어떤 기회를 줄지 명확한 어젠다를 수립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산·학·연·관 커뮤니케이션도 강조된다.
곽재원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은 “창조경제 구현이 시작된 지 3년 반이 남은 시점에서 이제는 창조경제 출구전략을 고민할 때”라며 “산·학·연 대화를 강화해 4차 산업혁명 시대 바이오 어젠다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기관으로 바이오산업에 부는 다양한 패러다임에 대한 관심이 크다”며 “하나로 모은 산업계 요구사항을 정부에 제안하는 동시에 정부와 업계간 조정자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규제 덫이 신산업 창출 막는다…벤처 생태계 구축도 필요
낮은 수가에 발목 잡힌 국내 병원은 생존 갈림길에 섰다. 환자 진료만으로 병원 운영이 어렵게 되면서 다양한 사업을 모색한다. 바이오헬스케어산업에서 수요자이자 공급자인 병원은 핵심 플랫폼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자체 병원정보시스템(HIS)을 개발해 약 700억원에 달하는 수출 성과를 달성했다. 세계 수준 의료 서비스와 관광을 결합해 외국인 환자 유치도 성과를 거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병원도 변신을 시도한다.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 정밀의료 구현 기술 확보에 착수했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 등을 결합해 의료 서비스 개선 등도 추진한다.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의료법 등 관련 규제가 발목을 잡는다. 디지털헬스케어 서비스 모델인 동시에 의료접근성 해소, 국가 보건 재정 건전성 확보 등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받는 원격의료는 수년 째 제자리걸음이다. 정밀의료 핵심 도구 `의료정보` 활용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철희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바이오헬스 시장 핵심 도구인 데이터 활용이 자유롭지 못해 디지털헬스케어 산업은 성장 기회를 박탈당했다”며 “중국은 원격의료 기반 다양한 O2O 서비스를 결합하면서 산업 육성, 환자 편의성 확보에 나서지만, 우리나라는 시도조차 못 한다”고 비판했다.
박래웅 아주대병원 교수도 “우리나라에서는 병원과 기업 모두 데이터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근원적 문제가 존재한다”며 “심평원(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의료정보를 공개하지만, 대부분 활용도가 떨어진다. 불완전한 데이터를 공개하기보다는 API 등 데이터 접근 프로그램을 공개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바이오 벤처 생태계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현대 바이오산업에서는 한 기업이 모든 영역을 아우를 수 없다. 각 분야마다 경쟁력 있는 벤처를 육성, 발굴해 서로 협업하는 프레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임채승 고대구로병원 연구부원장은 “로슈와 같은 글로벌 제약사는 직접 연구하기 보다는 경쟁력 있는 제약 벤처와 공동 연구 혹은 인수합병(M&A)으로 기술을 확보한다”면서 “우리나라는 M&A도 소극적이지만, 기술력을 가진 기업을 육성하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창조적 특허를 가진 기업을 대형 바이오 기업과 연계하는 인프라가 구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도 규제개선·신성장 동력 마련으로 화답
정부도 산업계, 병원, 연구단체의 날카로운 비판에 공감했다. 복지부, 산업부, 미래부, 농림부 등은 국가 차원의 바이오 발전전략을 수립 중이다. 곧 발표될 전략에 각 계 각 층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는 만큼, 이번 포럼 내용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동욱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4차 산업혁명은 현재 복지부가 주도해 마련하는 바이오산업 종합대책에 상당수 반영됐다”며 “유전체 분석 등 정밀의료를 비롯해 줄기세포 등 재생의료 분야도 ICT를 적용하는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진 산업부 창의산업정책관은 “현재 국가 간 다양한 산업에서 치열한 접전이 발생하는데 최일선에 바이오가 있다”며 “전자상거래 산업에서도 보듯 데이터가 핵심 역량으로 부각되는데, 바이오 영역에서도 핵심으로 부상한 만큼 업계 요구사항을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전했다.
이진규 미래부 기초원천연구정책관은 “과거처럼 정부 주도로 산업을 육성하기 보다는 기업이 원하는 사업을 영위하게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경쟁력은 있지만 자본 등 한계 때문에 시장 진출이 어려운 기업을 발굴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태헌 농림부 창조농식품정책관은 “농업계도 ICT와 바이오를 두 축으로, 농업 생산성 제고 및 고부가가치 상품 창출에 노력한다”며 “연 1조원에 가까운 예산이 관련 분야에 투자하고 있는데, 250만명 농민과 함께 4차 산업혁명 환경에 대응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가는 `체질개선`, 국민은 `인식개선`
국가 차원의 바이오발전전략이 발표되는 등 바이오산업은 태동기다.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고, 산업 인프라가 구축되는 단계다. 물리적 변화도 중요하지만 화학적 혁신도 병행해야 한다. 몇몇 대기업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바이오를 발판으로 전면 개편해야 한다. 국가 차원의 발전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도 필요하다. 아직 줄기세포, 종자개량 등 일부 영역에서는 윤리적, 보건적 우려가 크다. 국민 불신을 신속해 해소해 산업발전에 힘을 쏟아야 한다.
김동석 전자신문 부국장은 “삼성전자 매출은 우리나라 GDP 20%에 육박하며 의존도가 심하다”면서 “몇몇 대기업에 우리나라 경제가 의존하기 보다는 바이오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해 재도약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은 “농생명 바이오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높지만, GMO(유전자변형식품) 등 이슈로 인해 산업발전 논의는 시작도 못 한다”며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국민인 만큼 적극적 인식개선으로 바이오산업 발전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용철 의료/SW 전문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