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정현의 블랙박스]<9>게임이여 금융을 접수하라!

조선후기 역사에는 우리 민족이 놓친 천재일우 기회가 몇 번 나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1589년 일본 사신으로 선조를 알현한 대마도 영주 소 요시토시(宗義智)는 조총과 공작 한 쌍을 선물한다. 하지만 조총은 조정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창고에 처박힌다.

조정이 조총을 무시하게 된 것은 연발사격 능력이 활보다 떨어지고 우천시에는 무용지물이 된다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총은 장전 후 발사까지 2분이 걸렸지만 활은 분당 10발도 가능했다. 조총은 사정거리도 짧았다. 신립 장군은 겨우 50미터 사거리 조총을 비웃으며 `기병으로 조총부대를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만일 조선이 조총의 잠재적 위력을 파악해 즉시 개발에 나섰다면 임진왜란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활과 총의 대비는 어처구니없지만 혁신제품의 초기에는 항상 이런 일이 발생한다. 핵심은 우리가 잠재적 파괴력을 인지하느냐 여부이다.

임진왜란은 과거의 일이지만 지금 우리가 이런 오류에 빠져 중요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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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현 중앙대 교수

최근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앱을 출시, 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은행은 위비멤버스를, 하나은행은 하나멤버스, 그리고 신한은행은 신한판클럽을 출시했다.

재미있는 점은 은행들이 앱에 사이버머니를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의 하나머니, 우리은행의 위비꿀머니 등이 그것이다.

덕분에 이들 은행들이 앱을 출시할 때마다 나는 친구들의 전화에 시달리곤 한다. 때로는 같은 은행에 근무하는 친구들이 연락해 서로 자신의 사번을 추천자로 넣어 달라는 통에 곤혹스럽다. 은행 임원으로 있는 친구에게 물어 보았다.

“왜 자네 은행은 이런 카카오 같은 앱을 만드는가?” “은행도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것을 알았거든”

세상에서 가장 보수적인 은행이 플랫폼 비즈니스라는 말을 하다니 놀랍다. 은행은 세상의 플랫폼 비즈니스가 가진 산업적 파괴력을 감지하고 진입하는 중이다.

이들은 막상 `신세계`에는 진입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연말까지 1000만명 가입자를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총력전을 벌이고 있지만 모아진 가입자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떤 비즈니스를 연동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이 헤매고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용자들 유입시키고 그들의 친구를 불러들이고 새로운 콘텐츠를 연동하고 결재를 유도하고, 이런 일들은 모두 게임의 핵심역량이기 때문이다.

금융의 상품별 연동, 가상화폐 기반 핀테크, 고객 관리와 증식 등은 게임사가 지난 20여년 간 축적해온 노하우에 기반한다. 게임의 노하우와 금융이 융합할 절호의 기회이다.

더구나 미래의 은행은 가상 비즈니스가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직 은행들이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는 지금, 게임이 금융을 접수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게임사들이 이런 영토에 침입자가 들어온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게임사는 금융에 게임 노하우를 이식할 수 있다는 가능성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게임사는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너무 많은 기회를 놓쳤다. 중국 시장을 놓쳤고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를 놓쳤고 PC방이라는 혁신적 유통망을 글로벌로 전개할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이제 금융과 융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려 하고 있다.

조선 시대 조총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 선조들의 무능함이 오늘날 다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백 년 후 후손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 지 밤을 새워 고민해야 할 때 아닌가.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jhwi@c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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