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50년]<5> 삼성, 그룹 차원의 반도체 사업 진출… 2.8 도쿄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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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왼쪽에서 세번째)과 이건희 당시 부회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1982년 미국 보스턴대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후 관계자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이곳에서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할 것을 결심한다.

“세계 각국의 장기 불황과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저가품 대량 수출에 의한 국력 신장은 한계에 이르렀다. 삼성은 부가가치가 높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첨단 반도체 사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1983년 3월 15일 삼성그룹 발표문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 가운데)

발표 한 달 전인 2월 8일 이병철 삼성 회장은 일본에서 그룹 차원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한다. 이 결심을 삼성 안팎에선 `2.8 도쿄 구상`이라 부른다.

삼성은 이미 관계사를 통해 반도체 사업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약 10년 전인 1974년 12월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가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을 인수, 삼성반도체로 상호를 고쳐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 사업을 키울 생각이 없었다. 삼성반도체는 반도체 전후 공정 기술을 보유한 국내 최초 기업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부족, 삼성전자가 필요로 하는 부품은 만들지 못했다. 트랜지스터 생산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품목이 없었다. 삼성반도체의 가장 큰 약점은 자체 설계 역량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시장 개척이 힘들었고, 뒤따라 제품을 만들어도 제대로 된 값을 받을 수 없었다. 급기야 자본금을 모두 잠식한 채 가까스로 부도 위기를 넘기곤 했다. 혼자 힘으로 버티지 못한 삼성반도체는 결국 1980년 1월 삼성전자로 흡수합병(M&A)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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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삼성반도체 부천사업장. 훗날 삼성반도체는 재정악화로 삼성전자에 흡수합병된다.

이병철 회장은 삼성반도체 부진을 경험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회장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고바야시 고지 일본 NEC 회장에게 삼성반도체 공장의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천공장을 샅샅이 둘러보고 돌아간 NEC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입을 다물었다. 훗날 경쟁 상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을까. 이병철 회장은 이후 NEC 회장에게 반도체 기술을 요청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반도체가 뭐고? 얼마나 중요하기에 NEC 회장이 내 요구를 거절하노?”

삼성전자 40년 역사를 기록한 사사(社史) `도전과 창조의 유산`(2010년 발행)에선 “이 거절은 역으로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출하게끔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자존심 상한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에 관심을 기울여서 연구를 시작했다.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면서 반도체 전문가를 셀 수 없이 만났다. 일본이 한국과 같이 오일쇼크를 겪으면서도 무역흑자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반도체가 답인 것이었다. 일본 NEC는 당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 자리에 올라 있었다.

1982년 2월 이 회장은 보스턴대 명예경영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그는 이건희 당시 부회장과 함께 한 달여 동안 체류하며 경제계 인사를 만나고 산업계를 시찰했다. IBM, 제너럴일렉트릭(GE), 휴렛팩커드(HP) 등 미국 주요 업체의 반도체 생산라인을 둘러봤다. 이건희 부회장은 오랜 시간 반도체 사업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피력해 왔다. 이병철 회장은 미국에서 반도체 사업에 진출할 것을 결심하고 비서실에 검토 지시를 내린다. 기존의 반도체 사업과는 별도의 신규 사업 계획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 회장은 부가가치가 낮은 트랜지스터 등이 아니라 대규모 집적회로(VLSI)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검토 작업은 약 1년 동안 지속됐다. 시장조사와 인재 영입이 동시에 이뤄졌다. 캘리포니아대 이임성 박사와 이임성 박사가 소개한 이상준, 이일복 박사가 반도체 전문가로 영입됐다. 박희준 이사, 이윤우 개발실장, 임종성 제조기술과장, 정병선 통신기획실 과장, 이용호 반도체연구소 과장, 김재명 반도체기획실 사원으로 구성된 6명의 미국 출장팀을 파견해 현지에서 최신 자료와 동향을 수집했다.

미국 반도체 업계는 과민 반응을 보였다. 현지 언론은 `황색 침입자`가 나타났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 `최첨단 반도체 신규 사업계획서`다. 1983년 초부터 첨단 반도체 양산공장 건설에 착수하고 이후 5년 동안 4400억원 시설투자, 1000억원 연구개발(R&D)비를 투입,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을 차지하겠다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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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동경선언 직후 삼성이 언론에 실은 반도체 광고

이 회장은 이 보고서를 본 뒤 일본 도쿄에서 반도체 사업 진출을 확정했다. 1983년 3월 15일 삼성은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발표를 통해 그룹 차원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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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삼성 기흥 반도체 공장 전경

국내외에선 부정적 전망이 팽배했다. “일본 최고 기업들조차 힘겨워 하는데” “반도체를 우리 실력으로 어떻게 하느냐” “3년도 못가 실패할 것”이라는 냉소 어린 시선이 많았다.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기술력이 없고 한국 내수 시장이 형편없이 작다는 이유를 들어 삼성 반도체 사업이 실패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냉소와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반도체는 삼성의 간판 사업이 됐다. 지금 삼성전자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인텔과 함께 정상의 자리에 올라 있다.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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