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기억을 지우면 행복할까...`이터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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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 선샤인

기억을 삭제한다고 하면 뭔가 끔찍하다는 느낌이 든다.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아직 기억삭제란 단어가 낯설고 두렵다. 기억삭제는 우리 주위에서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어떤 이유에서든 기억을 조작하거나 삭제하는 것은 개인의 가장 신성한 소유물을 침범했다는 인식이 더 널리 지지를 받는 것 같다. 기억삭제가 비록 개인에게 어떤 이익을 준다고 할지라도, 인간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는 것 같다는 느낌도 준다. 과학기술 발달에 따르는 막연한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1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성형수술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부모님이 주신 신체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유교적 사고가 한몫 했을 것이다. 외모라는 사회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지성주의적 태도도 작용했을 터다. 자본주의가 부채질하는 욕망을 드러내놓고 따르는 것은 `체통 없는 짓`이라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성형수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상당히 누그러졌다. 연예인도 성형 사실을 당당히 밝힌다. `사회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성형이 낫다`고 보는 의견이 우세해진 느낌이다.

어쩌면 기억삭제도 성형수술과 같은 길을 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행복해진다면 기억을 삭제해도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는 날이 오는 게 아닐까. 기억삭제에 대한 끔찍한 느낌은 `촌티`가 돼 구석으로 밀려나는 시대 말이다. 그때가 되면 기억삭제에 따른 행복과 불행은 온전히 개인 책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잊고 싶은 기억을 지우면 정말 행복해지는 것일까?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기억삭제라는 소재를 이용해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조엘(짐 캐리)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라쿠나라는 회사를 찾는다. 이 회사는 아픈 기억을 떠올릴 때 활성화되는 뇌 부위를 단층촬영, 좌표를 기록한 뒤 이 위치에 있는 기억물질만 삭제해준다. 그러면 아픈 기억이 다시는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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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짐 캐리)이 주사를 맞고 깊은 잠에 빠져 기억을 지우고 있는 장면.

구멍이 송송 뚫린 찜기 같은 걸 머리에 뒤집어 쓴 조엘은 라쿠나 직원이 놓은 주사를 맞고 깊은 잠에 빠진다. 그가 클레멘타인과의 과거를 회상하면 이를 삭제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행복했지만 그래서 더 지우고 싶은 장면들이다. 하지만 삭제가 진행될수록 조엘은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이 시작되는 시기에 이른 그는 그 기억을 지우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고 이렇게 말한다. “이 기억만은 남겨주세요.” 하지만 깊은 잠에 빠진 조엘의 말이 들릴 리 없고, 영화는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른다. `배는 적당히 무거워야 물 위에 뜬다.` 어쩌면 인간도 적당히 못생김을 간직하거나, 적당히 괴로운 기억을 안고 살아야 더 제대로 살아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지우고 싶은 기억은 무엇입니까?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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