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디지털복지다]<5>저가형 컴퓨터 `라즈베리파이`-영국편

영국 케임브리지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케임브리지 대학이 있는 도시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은 1209년 설립된 세계 최초 대학이다. 만유인력의 아이작 뉴턴, 진화론의 찰스 다윈,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전자를 발견한 조셉 톰슨, DNA를 발견한 프란시스 크릭 등이 공부했다. 무려 노벨상 수상자 81명을 배출할 만큼 영국의 자존심으로 자리잡았다. 도시 중심 캠 강(River Cam)을 따라 오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트리니티·킹스·퀸스 등 수십 개 칼리지가 모여 있다.

이제 케임브리지는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 혁신을 선도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하이테크 기업이 케임브리지에 연구개발(R&D)기지를 두고 미래를 바꿀 혁신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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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피파이 로고

비영리 기관 라즈베리파이(Raspberry Pi) 재단도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두고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기차역 바로 앞 작은 건물에 있는 라즈베리파이 사무실은 미래를 바꾼다는 자긍심이 가득했다.

이 재단은 신용카드 크기 모듈형 소형 컴퓨터인 `라즈베리파이`를 보급하고 있다. 중앙처리장치(CPU)와 출력단자 등 컴퓨터를 이루는 필수 부품이 들어 있어 가전이나 예술작품, 로봇 등에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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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리파이2 모델B

가격은 25~35달러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5달러짜리를 내놓았다. 개발자가 프로그램소스를 공개하는 오픈소스 하드웨어다. 기판처럼 보이지만 리눅스는 물론이고 윈도10(IoT 버전)도 올라가는 어엿한 컴퓨터다. 처음에는 교육용으로 보급을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사물인터넷(IoT)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2012년 출시 첫해 100만개가 팔렸고, 지금까지 약 700만개를 판매했다.

에벤 업튼(Eben Upton) 라즈베리파이 창업자는 저가형 컴퓨터를 보급하는 이유에 대해 “빈부 격차에 관계없이 누구나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를 제공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30년전 영국 공영 방송 BBC가 대대적으로 컴퓨터 교육 캠페인을 벌이면서 보급한 `BBC 마이크로`로 프로그래머 꿈을 키웠다. 컴퓨터는 환상의 세계였다. 프로그램을 코딩해 그 결과가 모니터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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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리파이가 영국 교육현장을 혁신하고 있다. 방과 후 수업에서 라즈베리파이를 이용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컴퓨터의 눈부신 발전은 그런 즐거음을 빼앗았다. 운용체계(OS)와 응용프로그램이 지속 업그레이드 되면서 사용자는 코딩하고 컴퓨터를 조립할 필요가 없어졌다. 기술 발전이 제품과 인간을 서로 격리시킨 것이다.

라즈베리파이는 30년전 BBC 마이크로에서 영감을 받았다.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고 작동방법도 간단한 컴퓨터를 만들자는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30년전처럼 사용자가 스스로 뭔가를 만드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제품을 구상했다.

라즈베리파이가 주목 받게 된 것은 영국 정부 의지도 한 몫 했다. 영국 정부는 2014년을 `코드의 해(The Year of Code)`로 지정했다. 5세부터 프로그래밍과 알고리즘 수업을 컴퓨터 정규 교과과정으로 편성해 그해 9월부터 실시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이렇게 G20 국가 중 최초로 소프트웨어 교육을 의무화 한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조기 교육으로 어려서부터 미래 산업 근간인 IT에 필수적인 코딩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코딩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많아지면 영국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세계 IT 허브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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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리파이가 영국 교육현장을 혁신하고 있다. 영국 한 교실에서 학생이 코딩수업을 받고 있다.

라즈베리파이는 영국 각 학교에 보급돼 인기를 얻고 있다.

업튼 창업자는 “학생이 코드를 짜고 코드를 라즈베리파이에 업로드해 실제 기기를 작동해 볼 수 있어 교육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부품 가격이 저렴해지고 공개 자료도 많아 다양한 방식으로 컴퓨터를 만드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컴퓨터를 익힌 학생이 미래 영국을 이끌 엔지니어로 거듭날 것이라는 라즈베리파이의 생각이다.

학생 코딩교육을 담당할 교사 자질도 중요하다. 라즈베리파이는 각급 학교를 방문하거나 컴퓨터 담당교사를 초청해 라즈베리파이와 코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교육 프로그램에 여러 가지 조언을 하며 `파이카데미`라는 교사 교육 프로그램도 따로 운영한다.

영국 정부와 기업은 8비트 시절 많은 제약 속에서도 BBC마이크로 사업 등이 현 영국 IT기업 밑거름이 됐다고 평가한다. 실제 BBC마이크로를 만들었던 에이콘컴퓨터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했다. ARM으로 이름을 바꾸고 BBC 마이크로를 개발킷 삼아 저전력 저가형 CPU 코어개발에 집중했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면서 ARM은 대박을 터뜨렸다. 현재 생산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90%가 ARM 코어를 탑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도, 퀄컴도, 삼성도 모두 ARM코어를 탑재한 칩을 만들고 있다.

라즈베리파이재단은 컴퓨터와 보냈던 어린시절 즐거운 추억을 다시 한번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고 한다. 지역과 빈부 차별없이 모든 학생이 디지털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가난해 컴퓨터를 제대로 접하지 못했다는 학생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차별없이 균등하게 컴퓨터를 접할 기회를 갖는 사회적 토양을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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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리파이를 이용한 컴퓨팅 교육이 글로벌하게 확산되고 있다. 나이지리아 학생들이 라즈베리파이를 이용해 코딩작업을 하고 있다.

라즈베리파이가 성공을 거두면서 최근에는 오픈소스 하드웨어 시대라고 불릴만큼 비슷한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라즈베리파이는 타사 제품보다 저렴한데다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활발해 오픈소스 하드웨어 선두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 산업분야에서도 기업은 라즈베리파이를 활용한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업튼 창업자는 “라즈베리파이재단은 컴퓨터 교육을 통해 사회에 도움을 주는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 민간단체와 협력해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산업경쟁력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케임브리지(영국)=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