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도용 분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국내 사법 시스템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술 전담 법률 전문가 부족은 물론 기술 탈취 소송전이 벌어져도 법정에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전담 인력도 없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 등이 어렵게 소송해도 대기업과 합의를 종용받거나 대형 로펌의 소명서 등을 참조하는 편파적 소송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기술 도용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기술 도용을 선제적으로 막을 수 있는 아이디어·지식재산권 보호에 대한 구체화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후 강력한 처벌 등 징벌적 제도와 이를 뒷받침할 기술 전문 법률가 양성이다.
법조계는 기술 유사 사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보기술(IT) 기반 법률 전문가` 양성, 특허 전담법원 확대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대 출신의 실무 경험을 갖춘 판·검사 인력 확보와 기술 사건을 조속히 처리할 수 있는 사법 시스템 고도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기술 도용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특허 전담 법원을 만들고 특허판사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는 지식재산권 전담부를 신설했다. 대법원은 재판연구관 가운데 지재권 전담 연구관을 늘리고 있는 추세다. 또 최근 대전지방검찰청을 특허범죄중점검찰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사 기술 시비를 따질 전문 인력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법정에서 기술 침해에 대한 여러 증거와 증언에도 판·검사의 기술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 사례가 속출한다.
대기업과 특허 소송을 진행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소명서와 특허 침해에 대한 여러 사례를 증언했지만 판사가 기술 증언에 대해 스스로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라고 하소연했다.
비밀유지계약(NDA)을 의무화하는 기업 간 생태계 조성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구태언 테크엔로 변호사는 “기술 도용 분쟁을 피하기 위해 스타트업이나 핀테크 기업이 영업비밀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보호 관리조치가 매우 열악하다”면서 “NDA 계약 등을 의무화해 사후 권리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등에 비밀관리를 적극 요구하고, NDA를 거부하면 해당 기술을 공개하지 않는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상당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사업 협력을 위해 원천기술 내용까지 공개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또 보유 기술이 실제 독창적인 기술인지 등 사실 판단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핀테크 기술 도용을 주장하는 일부 기업은 실제 특허 등록이 거절되거나 모호한 유사 특허를 마치 원천기술로 포장하는 사례도 많다.
특허와 실용신안 이외에도 독창적 아이디어에 대한 보호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핀테크 사업 특성상 아이디어가 사업의 핵심이 되는 사례가 많다. 미국 등 선진국은 아이디어도 일종의 지식재산으로 인정해 도용이 인정되면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
길재식 금융산업 전문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