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익 칼럼] 미슐랭서울편이 외식산업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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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 테이블 서둘러! 20초 이상 데우지마! 빨리 가자미 가지구 와!" 전쟁터 같은 주방에서 브래들리 쿠퍼(아담존스 역)는 소리친다. 미슐랭 3스타를 받기 위해 도전하는 셰프를 다룬 영화 '더 셰프(원제:Burnt)'의 한 장면이다. 더 셰프에는 미슐랭 2스타라는 명예를 이룬 최고의 쉐프가 아집과 괴팍한 성격으로 모든 것을 잃고 방황하다가 다시 미슐랭 3스타에 도전하며 겪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식가의 성서(聖書)'로 불리는 '미슐랭가이드(Michelin Guide, 미쉐린가이드)'의 서울편 발간 소식에 외식업계 및 식품산업 전반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미쉐린코리아는 지난3월 기자회견을 열고 미슐랭 가이드 2017년 서울편이 올해 말 발간할 계획이며, 가이드에 실릴 식당들을 엄격한 훈련을 받은 전문 평가원들이 직접 방문 평가한다고 밝혔다.

미슐랭가이드는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쉐린이 약 110년 전부터 시작한 레스토랑 평가서로 레스토랑 및 셰프 평가에 있어서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일본, 홍콩&마카오, 싱가포르에 이어 4번째 미슐랭 가이드 발간 국가가 되었다. 이번 발간 발표는 서울 및 한국의 미식에 대한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이라 볼 수 있다.

2016년 대한민국은 먹방, 쿡방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요미식회', '3대천왕', '식신로드', '테이스티로드', '맛있는 녀석들' 등 인기 TV프로에서는 '숨겨진 맛집' 또는 '문닫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맛집' 이라면서 식당과 음식을 소개한다. 맛있다고 격찬하며 음식을 먹는 출연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한번 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러나 이렇게 방송에서 인정한 맛집들에 대한 불만도 아주 높게 나오고 있다. SNS나 블로그 등에는 "몇 시간이나 걸려 차 타고 가고 줄서서 먹었는데, 머가 맛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하거나, "진짜 맛집은 이집이 아니고 옆집 OOO이다"라며 맛집 선정이 객관적이지 않다라는 의견을 내는 경우가 아주 많다.

방송의 힘은 막강하다.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찾던 음식점이 방송에 나간 이후에는 몇 시간씩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맛집(?)'으로 격상된다. 식당들도 갑자기 늘어난 손님을 감당하지 못해 서비스를 제때 제공하지 못하고 음식 수준도 못 받쳐주는 상황도 생겨난다. 더군다나 이런 방송 맛집의 '줄서기'는 오래 유지 되지 못한다. 대부분은 2-3달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방송에 나오기 이전 상태로 돌아 간다. 진정한 미식을 찾기 보다는 방송에 나온 유행의 시류에 한번 쯤 편승하여 인증샷을 남기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다.웬만한 음식점은 대게 방송에 나왔다는 간판이 몇 개는 붙어 있다. 오히려 방송에 나오지 않은 식당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벌써부터 미슐랭 가이드에서 서울을 대표하는 맛집으로 어떤 레스토랑을 선정할지가 초미의 관심사 이다. 미슐랭 가이드의 전문 평가원들은 미쉐린 소속 직원이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한다. 미슐랭 가이드에서는 레스토랑을 별점으로 평가한다. 최고 등급인 별 3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아깝지 않은 식당'을, 별 2개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을, 별 1개는 '요리가 특별히 훌륭한 식당'을 뜻한다. 별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가 붙는다.

한국에도 레스토랑을 객관적으로 평가할려고 노력하는 서비스들이 있다. 온라인 사용자 리뷰 및 평점을 바탕으로 별을 1~3개까지 부여하는 맛집 추천서비스 '식신' 앱과 직접 방문 평가단을 운영하며 리본을 1~3개까지 부여하는 '블루리본서베이'가 대표적이다. 식신의 경우 서울의 별3개 레스토랑은 약 60여 개에 불과 할 정도로 까다롭게 선정한다.

영화 '더 셰프'에서는 미슐랭가이드의 암행 평가원을 찾아내는 방법이 나온다. 미슐랭평가원은 반드시 중년 남성 둘이 오고 한 명이 미리 와서 바에서 음료를 마시고 일행을 기다리며 식당 내부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문할 때 한 명은 코스 요리로, 다른 한 명은 단품 요리를 주문하고 포크를 바닥에 살짝 내려놓고 종업원의 반응을 살펴본다고 한다.

미슐랭가이드 서울편 발간이 확정되면서 서울 최고의 레스토랑과 셰프들은 자못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 이다. 서울 강남의 몇몇 고급 레스토랑들은 수천만원을 투자해 실내 인테리어를 다시 하고 식기와 테이블 등을 교체한다고 한다. 또한 시그니처 메뉴를 개편 하는 등 미슐랭 별을 받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미슐랭의 평가 기준은 어느 국가, 어느 도시든 동일하다고 한다. 리얼푸드에 따르면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 ▷요리의 창의적 개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 등 5가지 기준을 적용한다고 한다. 평가원들은 레스토랑을 한 번 방문하여 평가하지 않고 몇 차례 방문해 일관되게 맛이 재현되는지 평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해외에서 가 본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의 경우 대부분 맛 자체보다는 레스토랑의 분위기나 서비스에 많은 가점을 두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고급 레스토랑 일수록 대체로 맛이 더 좋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만큼 가격이 비싸서 가성비가 떨어질 수 있다. 미슐랭이 한국 서울의 식당에게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자못 궁금해 진다.

영화에서처럼 미슐랭으로부터 별을 받는다는 건 식당이나 요리사에게 커다란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그 동안 최고라고 자부하던 식당과 유명 셰프들이 별을 받지 못한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 TV에서 인기 있는 스타 셰프들이 실제 평가에서도 좋은 성적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미식가에는 방송에 드러나지 않은 실력 있는 숨은 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슐랭가이드의 경제적 효과도 크다고 볼 수 있다. 별을 받은 식당의 매출이 크게 상승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슐랭 식당을 가기 위한 관광객들의 입국이 크게 증가 할 것으로 보인다. 자연스럽게 서울은 동경, 홍콩, 싱가폴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 최고의 미식의 도시가 될 것은 자명하다.

이와 함께 미슐랭가이드 발간은 지금까지 인터넷 포털을 통한 식당 검색과 미디어를 통한 먹방 일변도로 성장해온 한국의 외식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객관적이지 못한 방송과 파워 블로거 중심의 레스토랑 추천도 이젠 변해야 할 시점이다. 객관적인 잣대를 가지고 레스토랑을 제대로 평가함으로써 외식 산업 전체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TV 속 먹방 시대에서 품격 있는 미식의 시대로 변모하기를 한껏 기대해 본다.

안병익 ㈜씨온 대표, 건국대 겸임교수

국내 위치기반 소셜기술 및 O2O 전문가다. 컴퓨터과학 박사로 맛집정보 앱 ‘식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와 한국LBS산업협회,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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