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투표일]20대 국회 “디지털경제 새 틀 짜야”

서유미의 단편소설 `당분간 인간`을 보면 물렁물렁해지다가 물로 변하거나 딱딱해지다가 가루로 변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낙오자`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인데 디지털경제 관점에선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디지털경제 세상에선 모든 단단하고 딱딱한 것이 물이나 가루처럼 형태를 잃고 디지털 속으로 녹아내린다. `디지털화(Digitalization)`이자 `비트(Bits)화`다. 전통산업 영역과 경계는 희미해진다. 국경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 같은 대융합은 기존의 제도 틀로는 담아 낼 수 없다. 20대 국회에선 이 같은 디지털경제를 잘 이해하는 인물이 우리나라 경제의 청사진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20대 국회, 디지털경제 `틀`을 완성하라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논의된 제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디지털경제`가 놓여 있다. 디지털경제는 디지털에 기반을 둔 경제를 말한다. 구체화하면 기존의 PC, 인터넷 외에 전통산업 전 분야에서 소프트웨어(SW)가 하드웨어에 녹아드는 형태로 나타난다. 스마트폰은 집어삼키지 못하는 게 거의 없다. 온·오프라인연계(O2O)는 이를 지칭하는 대표 용어다. 핀테크를 통해 은행이 모바일로 들어갔다.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 등은 말할 필요가 없다. 세상은 디지털경제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빠른 변화를 법과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버는 세계 최대 택시회사지만 정작 택시는 한 대도 보유하지 않았다. 기존의 `택시회사`라는 틀로는 우버를 정의할 수 없다. 그러니 현재 법률로는 우버와 일반 택시회사를 다르게 취급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큰 갈등을 불렀다. 물론 제도가 재빠르게 현실을 반영할 수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지난 2013년에 `네트워크 기반 교통회사`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면서 우버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사례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빅데이터 등 열거하기도 벅차다. 이런 `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디지털경제 선도는 요원한 목표다.

`구글세(BEPS)`도 마찬가지다. 전통 경제에선 고정사업장이 있어야 과세가 가능했다. 하지만 디지털경제에선 물리적 사업장이 없이도 경제 활동을 한다. 기존의 제도로는 법인세 부과가 어렵다. 구글이 대표 사례다. 우리나라도 이를 막기 위해 구글세 관련 법안이 19대 국회에 제출됐지만 처리가 되지 않으면서 자동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이 법안은 외국계 기업이 대다수인 유한회사도 외부감사를 받도록 규정했다.

20대 국회는 우리 경제 틀을 디지털경제로 바꾸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디지털경제전략), 독일(디지털독일2015), 호주(국가디지털경제전략) 등 선진국이 디지털경제 청사진을 제시하는 사이에 우리만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다. 단순히 정보통신기술(ICT), 과학기술, 벤처 관련 상임위원회뿐만 아니라 국회 곳곳에 디지털경제를 잘 이해하는 전문가가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경제,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보고서를 최근에 낸 김건우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1990년대 미국이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의 해박한 ICT 지식이 큰 도움이 됐다는 연구가 있다”면서 “글로벌 경제가 디지털경제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만큼 이를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제 다시 뛰게 하려면 “규제 과감히 철폐해야”

ICT, 과기, 벤처, 금융계가 20대 국회에 바라는 것을 들어보면 결국 `디지털경제의 틀을 만들어 달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융합`을 특징으로 하는 디지털경제가 전통산업 시대 규제에 가로막혀 꽃피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통신업계는 개인정보 보호에 가로막혀 헬스케어, 스마트에너지, 빅데이터 등 디지털경제를 대표하는 신사업 진출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신사업을 위해서는 개인정보를 간접 활용해야 하는데 과거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 투자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비식별화` 조치로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제프리존 특별법` 통과를 촉구했다.

방송업계는 새로운 기술 등장으로 방송과 통신 구분이 모호해지는 현실을 제도가 담아내기를 바란다. IPTV 결합상품이나 OTT 등 새로운 기술의 방송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유선방송이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사업자도 잠재 위험성을 안고 있다. 국내 콘텐츠 확보가 관건이다.

금융업계는 핀테크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풀어 달라는 요구를 내놓는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 산업자본의 지분 보유 규제를 기존의 4%에서 50%까지 대폭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4%로 규제하면 핀테크 벤처기업은 기술만 제공할 뿐 경영에서는 배제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벤처 관련 단체연합은 “재벌의 금융 지배를 막기 위해 도입한 은산분리 규제를 인터넷전문은행에 적용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다”면서 “벤처가 실질적 경영권을 갖고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로봇, 인공지능(AI) 업계도 전통 산업시대에 만들어진 규제를 답답해 한다. 인간을 중심으로 만든 이 규제는 `AI`라는 새로운 현상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율주행자동차나 AI의 법적 지위와 한계 등 `AI`가 가져올 변혁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임 업계 역시 `셧다운제` 폐지 등 게임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입법을 주문했다.

정치권도 이 같은 범 산업혁신계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 분주하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한국 정치권이 게임을 규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한국은 게임을 중독물로 규정한 유일한 산업국가라는 오명으로 해외에서 조롱거리가 됐다”면서 “게임을 문화로 보고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업 분야별 20대 국회에 바라는 정책 변화

[오늘은 투표일]20대 국회 “디지털경제 새 틀 짜야”

총선팀=성현희(팀장) 최호·김용주·오대석·박소라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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