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저녁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 국영 펀드 관계자는 흥미로운 말을 건넸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현재가 아닌 다음 세대, 또 다음 세대가 아니라면 그다음 세대를 염두에 두고 장기 안목에서 일을 진행한다”면서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급해서인지 단기간 성과가 없으면 포기하거나 실패한 줄 안다”고 말했다.
`중국을 잘 모른다`는 것은 우리가 쉽게 결론짓거나 미리 짐작해 속단한다는 뜻이었다.
당시에는 중국 특유의 만만디 성향과 우리나라 문화를 비교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최근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는 중국의 행보를 보면서 그의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중국이 `장기 플랜`을 가동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공세는 그야말로 전 방위적이다. 칭화유니그룹은 35조원, 국영기업 XMC는 28조원을 각각 메모리 반도체에 집중 투입한다. 또한 연봉 3~5배를 제시하며 국내 반도체 인력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엔 기업 인수도 두드러진다. 피델릭스, 멜파스와 같은 한국 기업을 속속 인수한 사례도 나왔다.
중국 행보에 걱정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국내로 향하지만 대책은커녕 상대에 대한 정보도 미흡하다.
국내 한 반도체 업체 대표는 “중국의 전략이 궁금하다”면서 “투자 규모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만들어서 어떻게 지원하는 건지 하나도 알려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초 칭화유니그룹이 낸드플래시 업체 샌디스크 우회 인수를 시도하다 미국 정부의 반대로 불발되자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꺾였다`며 안심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그러나 칭화유니그룹 회장은 해외 통신사와 인터뷰를 갖고 보란 듯이 “지방정부와 사모펀드로부터 자금을 조달, 삼성전자와 경쟁하겠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우려와 걱정은 피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국영 펀드 관계자의 지적처럼 속단도 금물이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은 시작됐고, 단시일에 끝나지 않을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반도체 굴기`에 대응할 우리의 `장기 플랜`은 있는지 더욱 궁금하다.
윤건일 전자/부품 전문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