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퍼스트 무버, 세컨드 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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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는 지평선 넘어 광활한 대지에 말을 달려서 깃대를 꽂으면 토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땅을 먼저 차지하기 위한 경주도 벌어졌다. 먼저 달려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다. 이 때문인지 미국인은 선발 주자 이점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땅에 깃대를 꽂았다고 안심하긴 이르다. 땅을 간척하는 동안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화두가 `퍼스트 무버(first mover)`다. 선점자, 개척자라고도 표현한다. 대통령과 장관, 대기업, 전문 경영인, 경제 전문가 모두가 한목소리로 개척자 정신을 강조한다. 인공지능(AI)이 부각되자 이 분야의 퍼스트 무버가 되자고 외친다.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모바일, 의료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분야에서도 주도권은 잡지 못한 상황이다. 언뜻 개척이나 선점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은 것처럼 비춰진다.

퍼스트 무버의 이점은 분명 있다. 브랜드, 기술 등 소비자가 한 번 익숙해지면 쉽게 바꾸지 못하는 독점 이익이다. 플랫폼과 같은 상품은 한 번 자리를 굳히면 이를 대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산업화 시대에 퍼스트 무버의 역할은 강력했다. 자본과 규모의 경제라는 방어막이 이들을 보호했다.

하지만 모든 수혜는 선점자로 성공했을 때 얘기다. 퍼스트 무버의 실패율이 50%에 육박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실패했을 때 감당할 무게는 그만큼 무거워진다.

세상은 바뀌었다. 하루가 다르게 산업이 변하면서 개척자의 이점은 줄어든다. 오히려 이들 한계를 극복한 후발주자에 유리한 국면이다.

이른바 세컨드 무버(second mover)의 약진이다. 퍼스트 무버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놓으면 이를 벤치마킹해 개선된 제품을 싼 가격에 내놓는 `추격자`보다 한 발 앞선 의미다.

10여년 사이에 뒤바뀐 글로벌 선도업체 순위가 이를 대변한다.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네이버, 샤오미 등을 대표로 들 수 있다. 이들은 분명 퍼스트 무버는 아니다.

구글이 창업할 당시 검색 업계에는 야후, 라이코스 같은 업체가 시장을 장악했다. 구글 창업자는 검색 불편함을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새로운 검색 툴을 개발했다. 시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기존의 선점자를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페이스북도 예외는 아니다. 2004년 당시 소셜 미디어업계에는 마이스페이스라는 업체가 있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마이스페이스의 화려한 디자인이 속도를 느리게 만든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를 극복한 페이스북은 소셜 미디어 1위 기업으로 등극했다.

스마트폰 후발주자인 샤오미가 제품을 출시하던 2011년 8월에는 삼성전자, 애플 같은 거대 기업이 시장을 호령했다. 레이쥔은 인터넷 판매라는 차별화 전략으로 맞섰다. 그리고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지난 1999년 네이버닷컴이 창업할 당시 국내 포털 시장은 다음이 주도했다. 네띠앙과 프리챌도 있었다. 한게임과 합병한 네이버는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분출하면서 포털 시장 1위로 올라섰다. 한국에서 만큼은 구글도 네이버를 이기지 못했다.

격변하는 시장에서 성공 조건은 여러 가지다. 혁신적 퍼스트 무버도 분명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시장을 선점하는 데 목맬 필요는 없다. 선점 자체도 쉽지 않다.

퍼스트 무버보다 더 나은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는지도 살펴보자. 퍼스트가 아닌 세컨드 무버가 정답일 수 있다.


윤대원 SW콘텐츠부 데스크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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