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옛날엔 `통신장이` 자부심...이젠 소모품 취급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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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휴대폰 판매업 종사자들은 “비전이 없다.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협력사와 관계를 고려해 얼굴과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기자, 이종천 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 B 사장, A사장.

올해 마흔 여덟인 A사장은 1998년부터 휴대폰 판매를 시작해 서울에만 매장 11개(대리점 8, 판매점 3)를 열었다. 18년 청춘을 바친 대가로 국내 상위 1%에 드는 휴대폰 판매 최고수 반열에 올랐다. 인터뷰에 얼굴과 이름이 나가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다. 거래 이동통신사와의 관계를 생각해 그런 것이었다. 그는 휴대폰 판매직을 자랑스러워했다.

A사장은 “옛날엔 삼성 휴대폰을 팔아 주면서 통신시장을 키운다는 `통신장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소모품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씁쓸해 했다.

그는 성공했다. 8개 대리점에서 월 휴대폰 1000대를 판다. 2014년 매출이 90억원에 달했다.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않다. 다 떼고 나면 그에게 남는 돈은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그럭저럭 운영은 가능한 상황이다. 그런 그가 `미래가 안 보인다`고 하는 건 왜일까.

“작년 매출이 60억원 정도입니다. 1년만에 30억원이나 줄었어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이후 매장당 월 판매량이 50대 이상 빠졌습니다. 저야 먹고는 살지만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가 없어요. 이젠 직원이 대리점 낸다고 하면 절대 못하게 말립니다. 3년 만에 신용불량자가 되거든요. 결혼도 못해요.”

A사장은 휴대폰 유통구조가 뿌리째 바뀌는 것을 지켜만 본다. 18년 경력 고수에게도 뾰족한 수가 없다. 단통법 도입 1년 반 동안 세상이 바뀌었다. 기기변경·번호이동 간 지원금 차별이 사라지면서 기기변경 천지가 됐다. 비중이 70%가 넘는다. 기기변경은 돈이 안 된다. 이통사가 푸대접한다. 판매장려금(리베이트)이 번호이동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판매장려금 의존도가 높은 중소유통점은 된서리를 맞았다. 엄청난 매장 임대료는 덤이다. 그가 한 달 내는 임대료만 6000만원이다.

옆에 있던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가 “판매점 50%가 가게를 내놨지만 불황으로 그마저도 안 나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곳이 태반”이라며 “내 말이 거짓인지 부동산에 가보라”라고 호언했다.

고통은 또 있다. 휴대폰 유통이 대형화된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발품 실종`이다. 단통법은 평등을 외친다. 시간·장소와 관계없이 판매 조건이 같다. 소비자는 가기 편하고 서비스 좋은 곳으로 몰린다. 이통사가 직영점을 강화하고 롯데하이마트 같은 대형 유통점이 휴대폰 판매에 발 벗고 나섰다. 심지어 조용하던 삼성전자·LG전자까지 적극 뛰어들었다. 삼성전자 `갤럭시 클럽`에 가입하려면 디지털프라자를 방문해야 한다.

하소연할 곳은 없다. 난립하는 휴대폰 매장을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도 안다. 이 이사는 “그렇게 따지고 들면 할 말은 없다”고 했다. `호갱(호구+고객) 잡고 소고기 먹던` 판매 방식의 문제는 그도 인정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내팽개치는 건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한때는 파트너였는데 이젠 나 몰라라 하는 건 도리에 어긋난다고도 했다. 그는 정부와 이통사가 상생방안을 만들어 줄 것을 호소했다.

“우리가 제 살 파먹는 짓 한다는 건 알아요. 이통사 지침이긴 하지만, 리베이트 더 준다고 손님한테 고가요금제를 강요하는 건 우리예요. 한 번 당한 손님은 다시 안 옵니다. 반성합니다. 그래도 이 일 하는 사람이 20만명입니다. `생계를 포기하라`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김용주 통신방송 전문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