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세로 가격 경쟁 심해져…코스닥 상장 팹리스 절반 휘청
코스닥 상장 반도체 설계 팹리스 업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실적 부진으로 내홍을 앓고 있다. 일부 업체는 상장 폐지로 내몰리거나 도산했다. 올해도 몇몇 기업이 상장 폐지 위기에 처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허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13일 코스닥 상장 반도체 설계 업계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난해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16개 업체 가운데 9곳의 매출액과 이익이 30% 이상 급감했다. 아날로그, 자동차 반도체를 다루는 업체는 전년에 비해 실적이 확대된 반면에 디스플레이구동칩, 이미지센서를 다루는 기업은 실적 하락세가 컸다.
디스플레이구동칩이 주력인 티엘아이와 아나패스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59.5%, 55.2% 줄었다. 전방 산업인 TV 등 디스플레이 업계가 수요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자 칩 분야 실적도 급감했다. 2년 연속 적자를 이어 오던 엘디티는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구동칩이 주력인 이 회사는 코스닥 상장 이전인 2007년 매출액이 지난해(94억원) 두 배 이상인 255억원이었다. 실적은 2013년부터 급감했다. 터치칩이 주력인 이미지스는 중국 팹리스가 관련 사업에 대거 뛰어들면서 가격 경쟁이 심해진 탓에 매출과 이익이 줄었다.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이 주력인 어보브반도체도 매출은 늘었으나 이익은 줄었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픽셀플러스는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57.4%나 급감했다. 주력 제품은 보안 카메라용 이미지센서다. 지난해 경쟁이 심화되면서 매출과 이익이 큰 폭으로 줄었다. 메모리 칩 팹리스 업체인 피델릭스는 지난해 매출이 16% 감소하고 이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이 회사는 지난해 중국 둥신반도체에 인수됐다.
상장 폐지 위기를 넘어야 하는 기업도 있다. 휴대폰 DMB칩으로 한때 잘나가던 아이앤씨는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 조만간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다. 무선랜, 전력선통신(PLC) 칩 분야를 신규 사업으로 육성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면 코스닥에서 퇴출된다. 멀티미디어 분야 제품군을 다루는 네오피델리티는 2013년,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적자를 지속했다. 올해 흑자 전환을 이루지 못하면 내년에는 관리 종목으로 지정된다. 상장 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은 매각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때 국내 팹리스 최대 업체 가운데 하나로 꼽히던 코아로직은 자본잠식 우려로 이미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이달 30일까지 잠식 우려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 폐지된다. 이 회사는 현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에 코아로직과 함께 한국 팹리스를 이끌던 엠텍비젼은 이미 2014년에 상장 폐지됐다.
팹리스가 무너지자 디자인하우스의 실적도 급감했다. 디자인하우스는 각 파운드리 업체 공정에 맞춰 실제 생산에 활용될 마스크 제작과 테스트 등 설계 분야 백엔드 작업을 맡는다. TSMC 디자인하우스 지정업체인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81.5%나 감소했다. 삼성전자 디자인하우스 파트너인 알파칩스 역시 영업이익이 54.6% 줄었다. 국내 디자인하우스 생태계는 이미 무너진 상태다. 최대 업체이던 다윈텍(현 한컴지엠디)은 한컴에 인수된 뒤 디자인하우스 사업을 접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강국’이란 단어를 ‘메모리 강국’으로 고쳐 써야 한다”면서 “허리 역할로 반도체 산업을 떠받쳐야 할 한국 팹리스인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결코 강하지 않다”고 말했다.
<2015년 코스닥 상장 팹리스 업체 실적(자료 전자공시시스템, 괄호 안은 전년 대비 성장률)>
한주엽 반도체 전문기자 powerus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