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바빠졌다. 4월 총선의 발목을 잡고 있던 걸림돌이 사라졌다. 지난주 법정 시안을 110일이나 넘긴 선거구 획정 법안이 처리됐다. 4·13총선 전쟁의 시작이다. 당장 예비후보를 뽑는 공천 심사가 관심사다. 공천 심사 워밍업 단계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태세다.
19대 국회는 내내 ‘태풍의 눈’이었다. 총체적 위기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당리당략을 앞세운 소모성 정쟁이 끊이지 않았다. 경제와 민생은 뒷전이었다. 산업을 위한 경제정책은 내팽개 쳐졌다. ‘경제 활성화법’은 여론에 밀려 통과됐지만 만신창이다. 실효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김영란법’도 있다. 제멋대로 통과된 몇몇 법안은 여전히 재계와 정치권을 뒤흔들 폭탄으로 남아있다. 정치 논리에 경제가 질식당한 게 19대 국회였다. ‘나 홀로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20대 총선을 보는 시선도 싸늘하다. 변화와 혁신을 외치지만 정치적 수사로 해석할 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선거혁명을 내세우지만 누구도 믿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19대 문제가 아니라 정치권 모두에게 부메랑이 될 판국이다.
변해야 한다. 방법은 인적 쇄신이다. 공천심사가 출발점이다. 모호한 공천 기준과 원칙 없는 ‘물갈이’로는 국민을 납득시키기 힘들다. 현미경 심사를 하고 과거보다 높은 기준으로 현역 기득권을 없애겠다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상징적 의원 한두 명을 공천에서 배제한다고 나락으로 떨어진 정치권의 위상이 올라가지 않는다.
‘정치 신인, 여성, 과학과 ICT 전문가’라는 공천 기준을 제안하고 싶다. 이유는 세 가지다. 먼저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 구태에 젖어 있는 기존의 정치인으로는 국민들 마음을 돌릴 수 없다. 기득권에서 자유로운 후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치 신인이다. 가능한 한 젊은 세대면 좋다. 두 번째는 깨끗해야 한다. 여성은 지금까지 아웃사이더였다. 상대적으로 기성 논리에 물들지 않고, 원칙 중심이며, 투명하다. 이미지도 나쁘지 않다. 대통령도 여성이니 금상첨화다. 정치권에서는 지역구 30% 공천을 약속했으니 명분도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은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질 분야다. 정치권이든 기업이든 가장 큰 고민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장 새로운 먹을거리,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데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우리가 잘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결국 ICT와 과학기술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도 출발점이 여기다. 이제는 역랑 있는 ‘테크노크라트’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방법이다. 300개 지역구 모두를 이 기준으로 뽑을 수 없다. 그럴 수도 없다. 우선 새로 생긴 지역 분구에 전략 공천하는 방안은 어떨까. 선거구 획정에서 16개 지역구가 새로 생겨났다. 지역도 고르다. 분구 지역구는 현역의원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다. 모든 후보가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진흙탕 싸움보다 공약 대결에 나설 수 있다. 전체 지역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채 10%도 되지 않아 부담도 덜하다. 반면에 국민에게는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 주고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진원지로서 선전 효과가 크다.
3월 20일께 공천이 마무리된다. 새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얼굴을 바꾸는 방법이 제일이다. 정치는 사람이 한다. 욕먹을 각오로 개혁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욕먹는 국회보다 ‘사람 없는’ 국회가 더 암울하다.
강병준 통신방송부 데스크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