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에 사진 수필집 ‘약수동 출근길’을 출간하고 나서 칭찬도 들었지만 "왜 자신을 혹사시키며 힘들게 사느냐"며 핀잔을 주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대체로 핀잔을 주는 이들은 주로 일정한 시간에 회사에 도착을 해야 하는 직장인들 보다는 출근길이 별로 상관이 없는 개인사업자 또는 주부들이었다. 그래서 출근길에서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왔다는 면에서 그들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길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허황되게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있다. 직장인들은 출근할 때 지하철이나 버스, 급하면 택시를 이용하기도 하고, 자가용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도 많다. 그리고 대부분의 출근길은 교통지옥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출근길을 좀 더 알차게 보내려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직장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데 움직이는 차에서 책을 보면 눈이 쉽게 피로해진다.
필자가 권하고 싶은 효과적인 시간관리법 중의 하나가 출근길을 이용한 시간관리이다. 출근을 하는 형태들이 다르겠지만 필자가 권하고 싶은 방법은 약간 다르다. 버스로 출근하는 분이라면 한 두 정거장 먼저 내려서 걸어보라. 자가용을 이용하는 분들도 꼭 차를 사용할 경우가 아닌 때는 버스나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한 출근길을 시도를 해보자. 사실 촌각을 다투어 출근 시간에 맞추어야 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미리 내려서 그 것도 걸어서 출근해보라는 것은 황당하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이 삶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직장인들이 새해에 주로 하는 결심 중의 하나가 운동이다. 새해가 되면 운동 목표를 세우곤 하는 데 대부분 주로 퇴근 이후에 운동시간을 잡는다. 하지만 작심삼일, 실천이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운동은 시간 여유가 있는 이들의 몫이라 생각되고 하루 종일 업무에 지쳐서 퇴근하는 직장인들 입장에서는 빨리 집에 가서 쉬거나 다른 취미로 피로를 풀고 싶은 마음이 클 것이다.
퇴근 이후의 시간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누리고 싶은 직장인들에게 아침 출근길은 바로 효과적인 운동시간이자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주는 힐링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아침에 한 두 정거장 미리 내려서 걷다 보면 운동도 되고, 일찍 나오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 기분도 한결 상쾌해진다. 그 동안 바삐 움직이면서 지나쳤던 주변의 사물과 주위의 풍경들이 차츰 들어온다. 그리고 고민됐던 문제들이 걷는 동안 풀리기도 하고 하루의 계획들이 정리되기도 한다. 필자의 말이 믿기지 않다면 내일부터 한 달만이라도 한 두 정거장 미리 내려 걸어 보라. 분명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두 정거장 걷다 보면 욕심이 생긴다. 두 정거장 보다는 서너 정거장을 걸어도 되겠다는 배짱이 생긴다. 처음에는 약 10분에서 20분 걷는 게 한달 정도 지나면 2-30분 걷게 되고 4-5개월 지나면 5-6정거장으로 바뀌고 한 시간으로 늘어난다. 덥거나 춥고, 눈이나 비가 오는 등 날씨에 따라 여러 상황이 오겠지만 눈 딱 감고 3-4개월만 걸어보면 분명 색다른 기쁨을 얻게 된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는 다양한 방법 중의 하나가 걷기라고 의학상식에도 있다. 걷는 습관을 통해 지면이 발에 닿을 때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걸을 때 자세를 바로 하고 팔을 가급적 뒤로 나오도록 걷는다면 자세도 좋아지고 전날 폭음으로 힘들었던 위도 이상하리만큼 좋아진다.
출근길에서 걷는 동안 얻는 효과는 운동뿐만 아니다. 필자는 한 시간 이상 걸으면서 다양한 것을 학습하고 터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클래식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어서 2년간 걸으면서 클래식 음악과 해설을 들었다. 무료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유투브에는 아주 많아 배우기 안성맞춤이다. 외국어를 어느 정도 안다면 유투브나 애플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다.
교향곡을 듣고 싶으면 유투브를 통해 원하는 작곡자의 교향곡 번호로 검색하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지휘자의 연주 모습을 보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물론 관련한 해설도 굉장히 많다. 걸으면서 들으면 시끄럽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오히려 더 효과적이다. 출근길에서 몇 번 듣다 보면 큰 길보다는 다른 길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 동네 같은 길을 걸으면서 듣는 음악은 색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다. 마치 휴가를 즐기는 듯한 느낌이다.
필자는 출근길을 걸으면서 미학이론도 유투브 강좌를 통해 들었다. 하는 일과 관련이 없었지만 인문학에 대해 눈을 뜬 것도 출근길 걸으면서 배우게 되었다. 세상이 겉 보기엔 시계 속의 숫자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간에 대한 철학이 밑바탕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다양한 역사도, 일반 상식도 출근길에서 수확할 수 있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고급스러운 취미를 덧붙일 수 있다. 바로 기술의 발달로 휴대폰이 이제는 훌륭한 카메라의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사진 취미로 연결이 될 수 있다. 출근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다 보면 사진들이 조금씩 세련되고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게 된다. 같은 장소를 반복적으로 다양한 기후와 시간에서 촬영하는 것은 최고의 사진 촬영 연습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출근길이며 시간이지만 마음과 육체의 건강도 얻고, 다양한 지식도 얻고 좋은 사진까지 얻을 수 있는 데 이보다 더 멋진 인생이 있을까? 필자에게 출근길은 인생을 바꾼 장소였다.
다만 춥거나 더울 때, 비나 눈이 올 때 복장에 약간은 신경을 써야 한다. 물론 어제 먹은 술로 급하면 찾아가야 할 화장실 위치도 미리 알아 두는 게 센스이다.
내일 당장 30분 일찍 일어나자. 그러면 인생이 바뀐다.
백승우 swbaek@hanmail.net 그랜드하얏트서울 상무이며, 하루 24시간도 부족할 것 같은 필자는 자신만의 시간관리로 호텔리어, 사진가, 교수, 궁궐 문화역사 해설가, 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즐겁게 하고 있다. 최근 클래식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싶다며 콘트라 베이스에 도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