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무정전전원장치(UPS) 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 입지가 좁아졌다. 기술력이 최우선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이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고성장이 예상되는 알짜 시장을 놓고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한층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기업이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글로벌 UPS 기업, 한국 집결=최근 델타일렉트로닉스가 한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글로벌 UPS 시장을 주도하는 상위 5개 업체가 모두 국내 시장에 입성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세계 UPS 시장 점유율(2013년 기준) 상위 5개 기업은 슈나이더일렉트릭, 에머슨네트워크파워, 이튼, 도시바, 델타일렉트로닉스다. 5개 기업이 전체 시장 과반 이상(54%)을 점유했다.
이들 기업은 국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첨단 제조업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 우리나라는 정전 대비와 함께 전력 품질 항시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성능 UPS 수요가 많다. 범용 제품보다 성능과 신뢰성 높은 제품을 많이 쓰기 때문에 진입장벽과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시장으로 꼽힌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UPS시장 규모는 1300억원 안팎이다. 아직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데이터센터 신·증설 등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
파생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정부가 UPS만 가능했던 일반 시설물 비상전원장치로 ESS를 허용했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만들어지면서 시장 규모가 현재와는 차원이 다르게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 UPS 업체 임원은 “한국 시장 규모가 아직 크지 않지만 데이터센터 등 고부가가치 시장 성장세가 빠르다”며 “한국 데이터센터, 첨단제조시설 레퍼런스(실적)를 확보하면 다른 해외 국가 영업에서도 신뢰성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토종기업 맞수는 없어=국내 UPS 시장이 해외 기업 각축장이 됐지만, 토종기업은 이 대열에 끼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은 시장에서 발을 뺐고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영세 제조업체나 유통업 수요에 집중한다. 그마저도 정부조달에 매달린다. 지난해 UPS 조달 발주 금액은 총 374억원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들은 규모의 경쟁에서도 밀린다. UPS 시장 순위 7위 미만 기업 매출액은 10억원에도 못 미친다. 이들 기업은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등 고수익 시장에서 신뢰성을 가진 대형 제품을 공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다.
중국 부품을 수입·조립해서 판매하는 업체도 많아 제조기업과 유통기업 구분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 UPS 유통업체 대표는 “국내 중소기업 제품을 사용하는 시장은 한정적”이며 “최근 공공기관도 높은 신뢰성을 요하는 제품은 발주를 따로 해 외산 제품을 주로 채택한다”고 밝혔다.
국내 UPS 시장에서 현대중공업 등 일부 대기업이 사업에 나섰지만, 외국계 기업과의 경쟁과 중소기업 보호 정책에 따라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철수했다. 이후 중소기업은 조달시장이라는 바람막이에 의존하며 현재 상황이 연출됐다.
전력 업계는 대·중소기업이 손잡고 연구개발(R&D)에 나서 신뢰성 높은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브랜드 구축에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은 UPS를 포함한 전력관리 통합솔루션으로 고유영역을 벗어나 시장을 확장 중이다. 전력 계측 등 연관 분야 기술이 뛰어난 우리 업계 경쟁력을 감안하면, 브랜드 인지도와 제품 신뢰성 확보가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UPS 유통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중기 제품으로는 데이터센터 등 고수익 시장에서 모듈화로 크기를 줄이고 고성능을 자랑하는 외국계 제품과 직접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최근 UPS가 전력관리 시스템에 포함된 하나의 솔루션으로 수주되는 경향인 것을 감안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고 유통망 확보에도 서둘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무정전전원장치(UPS)=정전 등 갑작스런 전원공급 중단 시 발생할 수 있는 데이터 손실을 줄이기 위해 일정 시간 동안 정상적으로 전원을 공급하는 장치. 제조업체는 물론이고 데이터센터 등 정전으로 손실이 큰 산업 분야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호 전기전력 전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