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원하지 않는 정보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가 공식 직업으로 인정받는다. 논쟁이 한창인 ‘잊혀질 권리’ 법제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정보기술(IT) 신직업으로 주목받으면서 시장도 크게 확대된다.
디지털 장의사가 방송통신위원회 추천으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신규 직군으로 고용노동부에 접수됐다.
인적자원개발위원회 관계자는 “직업 교육과 직무능력 평가를 위해 산업 현장에서 신설을 요구하는 직군 외 방송통신위원회가 ‘디지털 장의사’를 추가로 추천했다”며 “고용노동부 신규 직군으로서 의견 수렴이 끝나 NCS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장의사는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원치 않는 정보를 대신 삭제하는 사람이나 업체를 의미한다. 온라인 상조회사라고도 불린다. 사람이 죽으면서 온라인에 남아 있는 사진을 삭제하고 계정 탈퇴 업무까지 맡는다. 2011년 미국 라이프인슈어드닷컴이 정보 삭제 대행사업을 시작하면서 관련 업체가 우후죽순 늘었다. 라이프인슈어드닷컴은 가입비 300달러에 회원이 사망하면 관련 정보를 삭제한다.
국내에는 30여개 디지털 장의사 전문업체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방통위가 파악하기는 국내기업 20여개와 해외업체 10여개 수준이다. 업무와 분야도 과거보다 크게 늘었다.
온라인평가관리 전문회사 맥신코리아는 디지털 정보 삭제부터 기업 위기, 온라인 평판까지 관리한다. 의사·변호사·최고경영자·연예인·정치인 등 개인의 부정적인 기사·댓글 관리도 대행한다. 업계 관계자는 “건당 수수료나 가입비 등 비용 산정 방식은 다양하다”며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을 지불하고 정보 삭제를 대행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장의사가 IT 신직업으로 각광받는 배경에는 ‘잊혀질 권리’가 있다. 지난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있다. 당시 한 스페인 출신이 채무 문제로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내용의 기사를 구글 검색에서 삭제해달라는 주장에서 시작됐다. 법원이 인터넷 검색 결과에서 민감한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하도록 인정하면서 업계 관심이 쏠렸다. 판결 후 구글은 6개월 만에 19만1233건 정보(URL) 삭제 요청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잊혀질 권리에 대한 법제화 움직임이 활발하다. 방통위를 중심으로 잊혀질 권리를 현행 규정에 적용하는 방안과 법제화 과제 등 다각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규정화한 움직임도 나타났다.
지난해 강원도는 ‘잊혀질 권리 확보사업 지원 조례’를 마련했다.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강원도민의 잊혀질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시스템을 도입하고 비용을 지원한다는 게 골자다. 사업 추진을 위해 전문업체(디지털 장의사)와 협약을 체결할 수도 있다.
디지털 장의사가 NCS 직무에 포함되면 정부는 관련 교육 훈련과 직무 능력 평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잊혀질 권리 법제화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 서라벌대학교는 KG아이티뱅크와 사이버평판관리사·디지털장의사 등 IT 교육과정 운영과 전문가 양성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디지털 장의사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기업 등이 특수 목적으로 사실을 은폐하는데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적자원개발위원회 관계자는 “사실이면서도 특정 기업이나 집단 이익을 위해 정보를 삭제할 가능성도 크다”며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대안 마련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알 권리를 침해하는 요소로 지적받기도 했다.
<2014년 구글이 요청을 받아 삭제한 URL 현황(자료 : 구글)>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