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대금 6조5000억…美 시장서 경쟁사 넘어설 기반 마련
중국 하이얼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문을 전격 인수한다. 하이얼은 일본 산요에 이어 GE까지 인수하며 세계 최대 가전사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다. 지난 2014년 스웨덴 일렉트로룩스가 33억달러에 인수하려다 미국 반독점 규제로 무산된 지 1개월여 만의 거래 성사다.
GE는 15일(현지시각) 하이얼과 가전사업 매각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매각대금은 54억달러(6조5000억원)이며 조명사업은 GE에 남는다. 제프 이멜트 GE 최고경영자(CEO)는 “하이얼에 가전사업을 매각해 기쁘다”며 “중국에서 GE 브랜드를 키울 기회를 얻게 됐다”고 말했다.
하이얼은 이번 인수로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스웨덴 일렉트로룩스, 삼성전자, LG전자 등 경쟁사를 넘어설 기반을 갖췄다. 현재 미국 생활가전 시장은 월풀이 선두를 차지한 가운데 삼성전자, LG전자, GE가 뒤를 잇고 있다.
GE 가전사업은 호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대비 8% 늘었고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7% 상승했다. 2014년 GE 전체 매출에서 가전과 조명은 84억달러 매출로 5.5%를 차지했다.
하이얼은 앞으로도 ‘GE’ 브랜드를 계속 사용할 예정이다. GE가 갖춘 브랜드 경쟁력, 시장 영향력을 활용하려는 의도다. 하이얼이 2011년 파나소닉으로부터 인수한 산요 가전이 ‘아쿠아’ 브랜드로 일본, 동남아시아 가전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전례도 있어 이번 인수는 하이얼이 중국 중저가 가전 이미지를 벗고 해외 프리미엄 가전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중국 전자 업계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해외 기업의 브랜드 프리미엄을 확보하고 있다. 하이센스는 일본 샤프 멕시코 TV 공장과 TV 브랜드 ‘아쿠오스’, ‘쿼트론’을 인수,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샤프’ 브랜드로 TV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하이얼이 일렉트로룩스의 인수가보다 63% 높은 금액을 ‘베팅’한 것도 ‘차이나 디스카운트’ 극복을 위한 투자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하이얼의 부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 최대 가전시장인 북미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세계 시장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양 사는 초고가 프리미엄 제품군, 빌트인으로 점유율을 늘리며 월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을 모두 갖춘 하이얼·GE 합병 법인의 등장으로 시장판도 변화에 따른 이해득실 계산에 나섰다. 하이얼은 지난해 국내에서도 코웨이 인수를 검토한 바 있어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 미칠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한 가전업체 관계자는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 여겼던 중국 가전이 일본에 이어 미국 가전까지 사들이며 공격적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며 “북미 가전시장에서 경쟁이 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