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간편결제 전표 수거 필요한가...실효성 논란

Photo Image

최근 지불결제 시장에 밴(VAN)사가 수십년 간 대행한 ‘전표 수거’ 업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기존 플라스틱 카드 시절, 밴사는 카드사를 대신해 전표 수거와 보관 업무를 해왔다. 일종의 매입 업무인데 이는 밴 대리점 수익 중 약 30%에 해당한다. 카드를 부정사용했는지 등을 판별해주는 전표 수거와 저장 업무가 핵심이다. 최근 전자서명으로 교체되면서 종이 전표 외에 밴 대리점은 전자서명 전표 등을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 모바일 결제 서비스 삼성페이를 기점으로 다양한 간편결제가 등장하면서 전표 수거 업무가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출시되는 대부분 간편결제 서비스는 지문인증 등 사전 본인 확인이 이뤄지기 때문에 전표수거 목적인 카드 부정사용 등을 예방하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즉 카드 부정사용이 이뤄질 수 없는 이중 인증 결제 구조에서 전표 수거 수수료를 내면서까지 대행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란이다.

기존 결제 시스템 참여자 사이에서는 지불결제 업무에 대한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고 시장 논리에 맞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면 밴업계는 수십년 간 해왔던 고유 업무이며 전표 수거업무는 밴사 통합 대행 업무 일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따로 떼어내 대행료를 없애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간편결제에 전표 수거 업무가 불필요하다는 일부 입장에는 찬성하지만 신용거래 처리 프로세스에서 전표 수거 수수료만 지급하지 않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측 갈등은 결국 지난해 말, 현대카드가 밴사에 삼성페이 전자전표 수거 수수료를 청구하지 말라고 통보하면서 불거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간편결제 전표 수거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필요 없는 업무, 수수료 왜 주나 vs 프로세스 중 하나 ‘협의’ 필요

지난해 10월 현대카드는 삼성페이 전표 수거를 하지 말 것과 이에 따른 수수료 지급 불가를 밴사에 통보했다. 삼성페이는 지문인증 등 결제 전 본인인증이 이뤄지기 때문에 전표 수거 등을 할 이유가 없고 수수료를 줄 명분도 없다는 이유다.

밴업계는 한국신용카드조회기협회 중심으로 현대카드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경우 단체 행동까지 불사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대형 밴사가 현대카드에 전표 수거료를 청구했으나 현대카드는 삼성페이 전표 수거료를 줄 수 없다고 못박으며 10월 이후 정산된 수수료도 전체 대행료에서 차감해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밴업계는 점차 코너에 몰리는 상황이다. 현대카드가 주장하는 전표 수거 실효성 논란에 대해 현실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한발 물러서 밴 수수료 협상에서 재논의를 해달라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 삼성페이 전표 수거 문제가 간편 결제 전반에 대해 적용될 수 있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카드사와 밴사 간 치열한 ‘이해득실 싸움’이 벌어질 태세다.

우선 밴업계는 전표 수거료가 불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자 기존 전략을 바꿔 전체 밴 수수료 협상 시 전표 수거료에 대한 비용을 다른 부문에 녹여서 받아내는 쪽으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영세 밴 대리점 생존과 결부시켜 카드사가 수십년 간 동반자로 일해 온 영세 밴 대리점을 죽이는 격이라며 생존권 문제를 들고 나왔다.

조영석 조회기협회 사무국장은 “밴 대리점은 삼성페이 관련 매입·정산·전표 수거 등 대행비용을 받고자 단말기 설치 및 관리업무를 담당한다”며 “전표 수거료를 청구하지 말라는 건 영세 밴 대리점 사업장을 모두 폐쇄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효성 없는 대행 업무를 없애야 한다는 논리와 영세 사업자를 벼랑으로 모는 논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카드업계도 상황이 이렇게 되자 난감한 처지에 몰렸다. 실제 전국 수만개 밴 대리점 중 상당수가 전표 수거료로 이어가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자칫 갑질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어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올해 여전법 개정에 따른 가맹점 수수료 인하에 따라 밴 수수료를 낮춰야 하는 처지에서 대형 밴사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카드사로선 부담스럽다. 특히 정률제 전환을 앞둔 카드사는 간편결제 수거료 불똥이 튈까 쉬쉬하고 있다.

현재 신한카드를 비롯해 상당수 카드사가 밴 정률제를 추진 중이다. 건당 수수료를 지불하는 정액제에서 결제 금액 비율로 수수료를 지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금융당국은 침묵, 정률제 전환 대안 되나

마땅한 해법 없이 갈등한 더하고 있는 전표 수거료 문제에 대해 금융당국은 ‘해당 기업이 알아서 해결해야할 문제’라며 침묵하고 있다.

삼성페이로 촉발된 전표 수거료 문제는 금융당국이 추진 중인 무서명 거래 확대에도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여신금융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비대면 인증 등 새로운 인증방식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전표 수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할 때”라며 “카드사 주장에 여론이 공감하고 있고 양측 간 갈등을 키우기보다 정률제 전환 등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기존 밴 정액제를 정률제로 전환하고 수수료 체계에 대해 협상을 통해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당국도 간편결제 관련 밴 대행 업무에 대한 논란을 불식할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간편결제 도입 과정에서 카드업계와 IT기업, 밴업계 간 갈등이 재현되고 그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