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노믹스]<에디터스 컷> 삼성·애플 특허전, 출구는 어디?

성탄 연휴, 영화 인턴을 봤습니다. 지난 가을 저희 기자들과 다같이 한번 봤던 영화입니다. 이번엔 앞으로 돌렸다, 뒤로 감았다 핥듯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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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볼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늙은 인턴 로버트 드니로를 상징하는 구닥다리 소품인 폴더폰이 눈에 거슬립니다. ‘SAMSUNG’ 로고가 필요 이상 선명합니다. 젊은 CEO의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북 등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애플이 삼성에 2100억원을 추가 청구했다’는 외신을 접한 건 바로 그 때였습니다.

복기해보면, 삼성의 골든타임은 지난 2011년이었습니다. 그해 8월 독일 재판부는 삼성 갤럭시탭을 판매금지 시킵니다. 두 달 뒤에는 네덜란드가 애플 제품을 판금시켜달라는 삼성 측 가처분소송을 기각합니다. 호주에서도 애플이 삼성에 승소합니다.

이쯤되면 판세는 넘어간 겁니다. 하지만 삼성 특허팀은 ‘못먹어도 고’를 외칩니다. 물론, 삼성·애플전은 뒤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CT업체들이 얽히고 설킨 ‘대리전’ 성격이 강합니다. 자력 종전이 힘들단 얘기입니다.

그렇다해도 최고의사결정권자의 결단만 있었다면 순간 창피는 하나, 그쯤에서 그칠 수도 있던 싸움입니다.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이 이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관심이나 지시를 보였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반면, 그 해 10월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에도, 애플은 팀 쿡 체제하에서 대삼성 특허 소송전에 긴민하게 대응했습니다. 생전 잡스는 삼성 스마트폰을 보고 “우리 것을 베꼈다”며 대노했습니다. 팀 쿡 역시 “우리 특허를 훔쳐가면, 누구든지 끝까지 추격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지곤 했습니다. 양 측 CEO의 대응은 흡사 영화 인턴에서처럼 ‘묘한 대조’를 이룹니다.

결국 이렇게 골든 타임을 놓친 삼성은 다음해인 2012년에야 신종균 사장이 나서 팀 쿡과의 담판을 진행하지만, 이미 버스 떠난 뒤였습니다.

이 무렵 전자신문에서 외신을 담당하던 저는 국내 언론과 외신의 상반된 반응을 현장에서 비교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애국심에 호소한 삼성의 언론플레이는 광고공세와 맞물려 국내 여론을 ‘삼성=피해자’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늦었지만 이 때라도 국내 언론이 객관적 잣대를 갖고 삼성을 꾸짖었다면 지금의 사태까지는 빚어지진 않았을텐데, 저 역시 미필적 고의를 피해갈 수 없는 대목입니다.

혹자는 대애플 특허전으로 삼성이 글로벌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합니다. 하지만, 전 이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개전 초 잠시 ‘화제성’ 주목은 받았을지 몰라도, 이후 재판 전개 과정에서 삼성은 ‘흉내쟁이’(Copycat)나 ‘거짓말쟁이’(liar)와 같은 꼬리표를 달게 됐습니다.

이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 비즈니스 세계에선 매우 모욕적인 말입니다. 이미지 메이킹 패착은 최근 삼성 스마트폰의 구미 시장 점유율 하락 원인중 하나입니다.

이번 연말인사에서 삼성 특허팀 임원중 4명이 옷을 벗었습니다. 대부분 출원 담당입니다. 법무 담당이 아닙니다. 애플을 상대로 항전 의지를 보인 겁니다.

뜻은 갸륵하나, 지금 삼성에게 필요한 건 출구입니다. 다행히 삼성과 애플 사이에는 ‘러브 라인’이 살아 있습니다. 반도체 등 일부 사업부는 송사중에도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이를 중재자(ice breaker)로 활용해야 합니다. 안드로이드 진영 등 뒤에 붙은 변수에 대한 좌고우면은 이제 됐습니다. 실리만을 보고, 이재용 부회장이 나서, 끝을 봐야합니다.

장기전이 능사가 아님을 애플의 이번 추가청구에서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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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동 IP노믹스 편집장 nina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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