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은 억울하다. 생김새 만으로 못생긴 얼굴에 비유되니 말이다.
게다가 늙은 호박이라면 어떤 심정일까? 그런데 실제로는 젊은 호박보다는 오히려 늙은 호박이 영양이 많고 활용도도 높다.
미국의 대표적인 축제인 할로윈(Halloween)을 생각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도 바로 늙은 호박이다. 할로윈이 되면 각 가정에서 늙은 호박으로 잭 오 랜턴(Jack-O’-Lantern)이라는 등을 만든다.
늙은 호박은 여름에 수확하지 않고 노랗게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수확한 것이다. 늙은 호박은 애호박이나 풋호박에 비해 성숙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으로 보면 된다.
늙은 호박의 정식 이름은 청둥호박이다. 맷돌호박이라고도 한다. 맷돌호박은 모양이 맷돌처럼 둥글납작하게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박은 박과에 속하고, 종류도 다양한데 늙은 호박은 동양종으로 원산지는 중앙아메리카로 추정한다, 호박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9000년 전부터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전 세계로 전파했다고 한다.
“세상사를 말할 때는 / 겉만 보고 말하지 마라 / 홀로 꽃 피우고 맺힌 / 호박덩이일지라도 / 단 한 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 / 숨 턱턱 막힌 삼복더위와 / 처서 넘은 입동까지도 / 지칠 줄 몰랐을 저 불같은 성정”- 박철영 시 ‘늙은 호박’ 중에서
그래서일까? 위 시에서도 보듯 늙은 호박은 숙성된 기간만큼 성숙하고 더 많은 영양소와 효능을 가진다. 늙은 호박을 두고 노래한 시인은 호박의 겉만 보고 말하지 말고 늙은 호박이 견뎌낸 시간을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나 식품이나 마찬가지다.
늙은 호박은 쓸모가 많은 채소다. 우선 겉이 단단해 저장성이 좋으므로 식량이 부족하던 과거에는 가을부터 이듬해까지 구황(救荒) 식품으로 이용했다. 또 어린덩굴과 잎은 익혀 먹고, 호박은 죽을 끓여 먹거나 잘 말려서 각종 요리에 쓰인다.
호박은 잘 익을수록 당분이 증가한다. 늙은 호박의 당분은 소화 흡수가 잘 돼 위장이 약한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에게 특히 좋다. 전분이 풍부하고 소화 흡수가 잘되는 당질과 비타민A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이 베타카로틴인데, 이 성분 때문에 늙은 호박이 노란빛을 띤다. 녹황색 채소나 과일, 조류에 많이 함유된 베타카로틴은 항산화 작용을 하고, 피부 건강을 유지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베타카로틴은 체내에 들어가면 비타민A와 같은 효력을 나타낸다.
베타카로틴은 매우 중요한 파이토뉴트리언트(phytonutrient, 식물만이 가진 영양소)로서 면역력 강화에도 도움을 주고 최근에는 폐암 예방 효과까지 입증됐다. 베타카로틴을 함유한 녹황색 채소의 대표식품격인 시금치는 2002년 미국의 ‘타임’지에서 세계 10대 슈퍼푸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늙은 호박에는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고혈압과 당뇨병 치료에 도움을 주고,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박은 피부 미용과 노화 방지는 물론 기운을 북돋아 주는 효능이 있다. 또한, 식이섬유소가 풍부하게 함유돼 있어 변비에 효과적이다. 이뇨 작용을 하기 때문에 출산 후 여성의 부기를 빼는 데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늙은 호박이 산모 부기를 빼는 데도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산모의 적혈구나 헤모글로빈 수치 향상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늙은 호박을 주원료로 한 한방 생약재 추출액을 분만 직후 산모에게 주었더니, 적혈구와 헤모글로빈 수치가 올라가는 효과를 보인 것이다.
늙은 호박은 껍질부터 과육, 씨까지 영양분이 풍부하게 함유된 만큼 통째로 다 활용해도 좋다. 호박씨에는 필수 아미노산과 비타민E가 들어 있어서 뇌의 혈액순환과 두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 몸에 좋은 불포화 지방과 머리를 좋게 하는 레시틴 성분이 많고 단백질을 구성하는 필수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다.
호박씨가 혈압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으며 산모가 젖이 부족할 때 호박씨를 구워서 먹으면 젖이 많이 나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겨울철 기침이 심할 때 구워서 설탕이나 꿀과 섞어서 먹으면 효과가 있으니, 긁어낸 호박씨는 버리지 말고 따로 모아 말려 먹거나 삶아서 보약처럼 먹어도 좋다.
늙은 호박은 다양한 요리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많이 먹는 호박죽이나 호박범벅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고구마, 팥, 넝쿨 콩, 찹쌀, 새알심 등과 함께 만드는 호박범벅은 맛도 좋지만 다양한 영양소를 보충해주기 때문에 밥을 대신한 훌륭한 영양식이다.
호박의 과육 부분을 쪄서 으깬 뒤 죽처럼 만들면 아이들도 좋아하는 호박죽이 된다. 그리고 늙은 호박의 당분을 이용해서 호박엿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또 과육을 우리거나 졸여서 차로 마실 수도 있다. 호박 차는 우리 몸을 따뜻하게 해 혈액순환을 도와주기 때문에 추운 날씨에 더욱 좋다.
늙은 호박으로 만든 호박 꿀단지는 출산한 뒤의 부기를 빼기 위한 음식으로 이용한다. 만드는 방법은 먼저 꼭지 부분을 동그랗게 도려내고 속의 씨를 긁어낸다. 속에 꿀을 한 컵 정도 넣고 도려낸 부분을 다시 막아 3~4시간 동안 찌면 안에 물이 고이는데, 이것을 따라 마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호박을 구매하는 것이 좋을까? 늙은 호박은 선명한 황색을 띠는 것이 좋다. 색이 너무 연하면 속이 덜 익거나 영양이 떨어진 것일 수 있다. 껍질에 윤기가 돌고 전체적으로 동그랗게 균형이 잡혀 있고, 분가루 같은 하얀 것이 많이 묻어있는 호박이 맛있는 호박이다.또 꼭지가 무르거나 멍들이 않고, 속으로 움푹 들어간 호박이 더 달다. 호박을 들었을 때 너무 가벼울 경우 속과 조직이 엉성할 수 있으니 묵직한 호박을 사는 것이 좋다.
늙은 호박을 보관할 때는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하며, 잘라서 손질한 후에는 잘 밀봉해 냉장고에 보관해 두고 먹으면 좋다.
깊어가는 겨울, 뜨끈한 호박차 한 잔으로 속도 달래고 건강도 챙겨보자.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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