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선 국산ICT 장비 "신뢰성 확보가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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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와 랩 인포사이징 대표(TPC 인증위원)

“정부가 규제를 통해 진입을 제한하는 것보다 중소업체 제품 성능을 끌어올려 대형기업과 경쟁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합니다. 개발단계부터 목적을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성능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프로세스를 따르다보면 한국기업도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서현동 정보통신기술협회(TTA) 사옥에서 프랑수와 랩 인포사이징 대표는 전자신문과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했다. 진입장벽을 세워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 전에 그들이 보유한 기술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했는지 반문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프랑수와 랩은 서버, 스토리지, DBMS 등 ICT 솔루션 성능검증의 세계적 권위자다. TPC는 IBM, HP, 델, 클라우드데라, 후지쯔 등 글로벌 IT기업 22곳이 모여 공정한 성능평가 기준을 만들기 위해 만든 비영리 조직이다. 27년간 TPC 인증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서버 성능평가 기준인 TPC-C, TPC-H, TPC-E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기로에 선 국내 중소 서버, 스토리지 업계에 정부가 규제를 통한 지원을 하기 보다는 자생력을 키우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 ICT장비업체로 구성된 한국컴퓨팅산업협회는 서버, 스토리지에 대한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지정을 신청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프랑수와 랩은 “TPC 인증은 단순히 제품 성능만 측정하는 게 아니라 제품개발 단계부터 출시까지 전 주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신뢰성에 바탕을 둔다”며 “신뢰할 수 있는 인증모델을 바탕으로 중소기업도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TPC 인증은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각국 정부가 장비 도입 시 평가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가지다. 사실상 세계 표준이며 객관적 평가지표로는 유일하다.

이 인증을 받은 국내 중소 ICT장비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수백만 원이 넘는 인증비용과 미국에 직접 가야하는 번거로움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공공기관과 기업은 중소기업 제품이 신뢰성이 떨어진다며 도입을 꺼린다.

프랑수와 랩은 “세계 각국 정부와 협업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중국이나 일본 기업은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며 “이는 자국 인프라 업체를 육성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14억원을 투입해 ‘퍼스트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이 사업으로 히타치 제작소는 장비 개발 단계부터 TPC 전문위원 도움을 받아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했다. 중국 정부 역시 2008년부터 1700억원을 투입해 인스퍼 등이 TPC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외산서버 업체 독점방지와 자국업체 성장 유도가 목적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2013년 ‘ICT장비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통해 오는 2017년까지 수출 가능한 명품 ICT장비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서버, 스토리지, 데이터센터 신규 R&D 예산은 2년 연속 제로에 가깝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면서 국제표준에 맞는 성능확보 전략도 없다.

프랑수와 랩은 “IBM, HP 등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TPC 인증은 성능과 신뢰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구체적 개발목적과 성능 관리를 위한 프로세스 정립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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